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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의 눈 ㅣ Dear 그림책
아르투르 스크리아빈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최혜진 옮김 / 사계절 / 2021년 8월
평점 :
세네갈. 연중 평균 최저기온 20도. 이런 더운 나라에서 눈은 왜 내리고, 엄마는 왜 울면서 노래를 부르고, 왜 나는 그 눈오는 추운 날에 입을 옷이 구멍난 반바지밖에 없었을까.
그림보는 것도 좋아하고 책읽은 것도 좋아하는데 둘 다 모아놓은 그림책은 거의 문맹수준이다. 이제 막 그림책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토록 다양한, 이토록 특별한 그림책들이 이토록 많았다니. <세네갈의 눈>은 나에게 두번째 그림책이다. 그림책에서 가장 많은 암시를 담고 있는 표지는 신비롭고 거친 연필 느낌이 드러나지만 둥글고 부드러운 선이 묘하게 어울리는데 전체적으로 푸른 색 톤이 차갑고 우울하게 다가온다.
선도 흐릿하고 배경도 주요인물의 모습도 선명하지 않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림책 안에 행복해보는 캐릭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웃고 있는 사람도 없다. 그림책은 정말 묘한 책이어서 선 하나에도 감정을 담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구석에 담긴 작은 이미지로도 상상력이 어디로든 펼쳐지도록 도와준다. 따뜻하지만 다 불타버린 잿빛 같은 힘없는 이미지를 통해, 다가가고 싶지만 곧 없어져버릴 것 같은 엄마의 모습은 그림책을 보는 내내 조금이라도 선명한 엄마를 그려보려고 눈가에 힘을 주게 만든다.
<세네갈의 눈>을 읽기 전에 세네갈의 날씨를 먼저 검색해봤다. 눈이 올 수 없는 날씨. 눈이 온 일을 한 아이가 기억한다면 그건 꿈이거나 환상이거나 거짓말일 것이다. 엄마가 꿈이거나 환상이거나 거짓말이었던 걸까? 그림책에서 드러난 엄마의 표정은 아이를 불안하게 한다.
엄마는 왜 그리 멀리 있는가. 오래되어 낡고 흐릿한 이미지로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힐 거 같지 않다. 나는 이제 일곱살일 뿐인데, 죽을 만큼 추웠는데 하릴없이 하늘이나 올려다보아야 하는가. 엄마의 시간은 다른 눈송이를 상상하고, 멀고 평화로운 다른 시간을 꿈꾸는데 왜 나는 엄마를 바라보기만 하는가. 엄마의 노래를 듣고만 있는가. 엄마...라고 불러볼 수 있잖아. 울고 있는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를 만져볼 수 있잖아. 왜 눈송이 얘기만 하면서 막연한 그림만 붙잡고 가만히 있는 거야? 엄마가 그리 멀어지는 게 겁나지 않아? 엄마는 정말 어디로 가버릴 지도 몰라. 목소리만 남겨놓고 없어질지도 몰라.
글쎄,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어. 소리로만 들어야 한다면 그냥 가버리라고. 세네갈엔 눈 같은 건 오지 않아. 원래 오지 않아. 세네갈의 눈 같은 건 아예 가능하지 않아. 그리 불가능할 거라면, 다른 곳을 꿈꾸고 있다면 목소리도 남지기 마. 구멍난 반바지로도 견딜 수 있어. 죽을 만큼 추웠지만 죽지 않았어. 이렇게 막연하게 멀리서 아련한 기억만 남겨놓고 존재하지 마. 흐릿한 이미지로 보는 데 지쳤어. 노래도 더이상 원하지 않아. 제발 어떻게든 나타나지 마.
따뜻한 엄마에 대한 기억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그림책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세네갈에 내렸다는 눈처럼 헛된 망상 혹은 안타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