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이갈리아의 딸들 -수행
이갈리아의 딸들 이갈리아의 딸들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고
우리는 늘 가상의 세계를 꿈꾼다.
잔소리 없는 세상, 시험 없는 세상에서부터 자본의 억압이 사라진 그런 세상까지. 소설이나 만화, 영화, 심지어 최근의 전자 오락에도 이런 세상은 주요 테마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 가상의 세계 중에는 여성이 지배하는 아마조네스 왕국에 대한 것도 종종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가 반드시 이상향(Utopia)이지만은 않다.
우리가 가상의 세계를 꿈꾸는 것은 현실의 모순에 지쳐 있을 때여서, 모순이 제거된 상황뿐 아니라 모순의 반대급부를 상상하며 나름의 쾌락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순이 반대로 작용하는 곳에서 억압받던 이들은 희망을, 억압하던 이들에게는 섬뜩함을 줄 수만 있어도, 또 그런 상황이 절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이상향이 아님을 깨닫게 해줄 수만 있어도 그 세계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갈리아로 여행을 떠나려는 이들은 이것을 기억해야 여행 후의 실망을 줄일 수 있다.
그곳은 결코 여성의 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의 지옥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 단지 작가의 상상 속에 빛나는 풍자와 역설의 세계일 뿐이다.
`이갈리아`라는 명칭 또한 그러하다.
작가는 나라의 명칭이 평등주의(egalitarian)와 이상향(utopia)의 합성어라고 설명한다.
utopia의 어원이 `원래 없는 곳(no where)`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평등한 세상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실망하지 말기를. 이 말은 단지 `이갈리아`가 평등의 천국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일 뿐이다.
자, 그렇다면 진정한 평등의 땅을 찾아 여행을 떠나 보자.
유명한 홍콩 영화 중에 이연걸이 주연하고 성룡이 주제가를 부른 `황비홍`을 기억해 보자. 내용은 접어 두고라도 주제가는 기억할 것이다.
웅장한 선율에 맞춰 힘차게 흐르는 남성의 목소리, `남아당자강(男兒堂自强)`이 그것이다.
조화롭게( ) 돌아가는 이 현실을 조정하는 대원칙 중의 하나를 당당히 외치고 있다.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아름답다.
그러므로 각 성(性)은 그 원리에 따라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그 원리를 결정했을까 성경 과학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건 당연한 거야, 신체적인 조건이 다르잖아"라고. "여자는 남자보다 작고 약하고, 또 임신을 하잖아"라고.
그렇지만 그게 왜 그러냐고 하면 또 무엇이라고 할까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건 인류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고 그러므로 여성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면, 남성이 더 크고 강해진 것은 그렇게 훈련시킨 문명의 간계라면.
이갈리아에서는 이 모든 것이 현실과는 뒤바뀌어 있다.
월경과 임신을 통해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것은 wom(여성)이므로 자연을 숭배하듯 여성이 권력을 잡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원칙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연의 불공평함을 치유하는 것이 모든 문명의 임무이다`
노총각 선생님인 올모스는 이 원칙을 설명하며 문명의 발달이 어떻게 성별 분업과 계급 분화를 일으켰는지, 그리고 문명이 어떻게 불공평을 심화시켰는지를 설명한다.
근본적으로 성적 정체성과 계급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면서, 이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동성애 운동에 대한 관점, 결혼 제도(한쪽 성을 억압하는 합법적 기제/부성 보호), 피임과 낙태, 가사 임금 지불 문제 등에 대해서 끊임없이 풍자하고 역설한다.
그러나 무엇이 정답인가라고 물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물론 기본적인 사상은 변함없다.
항상 억압받는 것은, 자본을 가지지 못한 무산자 계급의, 억압받는 성이라는 것을. 이 세계의 하층 여성이 그렇고, 이갈리아의 하층 manwom(남성)이 그러하다.
계급이든, 성이든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억압하는 한 utopia는 없다.
언제나 모순은 한 덩어리이다.
그러므로 모순의 해결도 한 덩어리라야만 한다.
계급 해방만이 우선도, 성의 해방만이 우선도 아니다.
이갈리아는 매우 흥미로운 나라이다.
그러나 샅샅이 살펴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여행에 실망할 것이다.
우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성`으로 인해 억압받은 적이 있었던가. 한 번이라도 `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떠나야 할 것이다.
이 나라는 사전 지식이 많을수록 흥미가 배가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여행지에 도착했다면 몇 가지를 주의해서 보도록 하자.
첫번째는 언어의 자의성 문제이다.
man/woman/human이라는 도식과 wom/manwom/huwom이라는 도식, BC/AD 대신 사용되는 AJ/BJ. 얼마나 일방적인 언어들인가. 예수(Jesus Christ)를 기준으로 하는 BC/AD 구분은 이제 모두가 당연히 여기는 것이다.
AJ/BJ는 이갈리아의 예수에 해당하는 Donna Jessica(`하느님 어머니`의 딸인 wom)의 탄생을 기준으로 한 역사 구분법이다.
문명의 간계일까. 역사를 기준하는 인물은 항상 권력을 지닌 성(性)이니 말이다.
과학과 함께 세계의 한 축을 지탱해 온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땅의 주요 종교 지도자에 여성이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언제나 여성은 주신의 은혜를 입어야만 종교 내에서 그나마 위치를 차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영어에 나타난 남성(man)과 여성(woman), 인간(human)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왜 여성은 wo-man인가 male/female 역시 그러하다.
동양권은 그나마 준수하다.
한자나 한글의 경우 그런 언어의 성종속의 예가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좋은 점은 다행히도 `사람`이라는 중립적인 단어가 존재한다는 점일 것이다.
두번째는 `페호(peho)`라는 것에 대해서이다.
이것은 의식주 -기본적인 생활- 에 나타난 권력의 문제이다.
페호는 남성의 페니스에 씌우는 것인데 현실의 브래지어에 비유되는 것이다.
여성이 가슴을 가진 것이 부끄러운 일이고(물론 일부에서는 반대의 움직임도 있다) 남성이 페니스를 가진 것이 하나의 권력의 상징이 된 것을 재미있게도 풍자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입을지 참 궁금하다.
스커트 밖으로 나오는 것 같은데 참 우습겠군.
이갈리아에서는 남성이 페니스를 가진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들이 가진 신체적 조건은 모든 생활에서 그들을 억압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작은 페니스를 가져야한다.
즉 최소한의 권력만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성적 매력으로 통하고, 성적 매력은 움에게 선택받을 확률을 증가시켜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땅의 여성들이 사춘기가 되면 브래지어를 입어 가슴의 모양을 가꾼다는 명목으로 그것을 억누르며 동시에 주어진 권력이 억눌려지는지. 과거 미국의 급진주의 여성해방운동의 일환이었던 브래지어 태우기 행사나 맨움해방연합의 페호태우기행사가 결코 개인적이고 성적인 문제가 아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세번째는 역사 인식의 문제이다.
역사는 누가 무엇을 위해 쓰는 것일까
노총각 돌모스는 이 책에서 의미심장한 문제 제기를 가장 많이 내놓는 사람이다.
지나치게 `맨움다움`이 부족한 그는 상류계급의 상속인이지만 `부성보호`를 받지 못해 시들어가고 있던 사람이다(이 땅의 노처녀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한번 뒤돌아보기를…). 그런 그가 페트로니우스를 비롯한 젊은 맨움…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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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갈리아의 딸들 이갈리아의 딸들 -수행
출처 : 탐구스쿨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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