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내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혼자 순대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켜 먹는 나이 든 여자를 향해 쏟아지는 다종 다기한 시선들이다. 내가 혼자 와인 바에서 샐러드에 와인을 마신다면 받지 않아도 좋을 그 시선들은 주로 순댓국집 단골인 늙은 남자들의 것이다. 때로는 호기심에서, 때로는 괘씸함에서 그들은 나를 흘끔거린다. 자기들은 해도 되지만 여자들이 하면 뭔가 수상쩍다는 그 불평등의 시선은 어쩌면 ‘여자들이 이 맛과 이 재미를 알면 큰일인데‘ 하는 귀여운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에게 메롱이라도 한 기분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요절도 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반세기 가깝게 입맛을 키우고 넓혀온 타고난 미각의 소유자니까. (p. 26)

원고 마감이 코앞에 닥쳐 꼼짝없이 글을 써야 하는 날이면 나는 엄숙한 마음으로 목욕재계를 하는 대신 김밥을 만다. 이때 조금 신경 써서 속재료가 각기 다르게 세 종류의 김밥을 만다. 이렇게 해두면 끼니 걱정 없이 삼시 세 때 각기 다른 김밥을 먹으며 글에만 집중할 수 있다. 컴퓨터 옆에 놓고 먹기도 하고 오면가면 집어 먹기도 한다. (p. 49)

이제 밥만 있으면 된다. 따끈한 호박잎 위에 뜨끈한 강장과 밥을 얹어 쌈을 싸 먹으면 입에 불이 난다. 불이 나긴 나는데, 요즘 매운 음식처럼 불만 나고 마는 게 아니라 가슴속 깊숙이 구수하고 복잡하고 그리운 불이 난다. 다 식은 호박잎쌈과 깡장은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둔다. 일주일 내내 시원한 보리차를 끓여놓고, 매일 한 끼는 찬 호박잎쌈과 깡장을 꺼내 밥 싸 먹고 보리차를 마신다. (p. 107)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두 달을 해괴한 김치에 검푸른 나물과 씁쓸한 된장국만 먹고 살다보니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둘씩 부엌으로 숨어들어 몰래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부담도 덜어주고 각자 입맛도 충족시키니 일거양득이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어머니는 우리의 셀프 요리 행태를 적발하고 노기등등하여 이 집에서는 당신이 만든 음식만 먹어야 하며 당신의 부엌에서 임의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행위는 일절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귀신에게조차 그토록 자비로운 종교를 믿는 어머니가 왜 우리에게는 이토록 억압적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땐 몰랐지만 어쩌면 어머니는 우리가 음식을 하면서 풍기는 그리운 고기와 양념 냄새를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p. 209)

입가에 미소가 돌고 명절이 이래서 좋은 거구나 싶다. 태곳적 조상들이 명절을 기리고 기다렸던 이유도 이렇게 휴식과 충전, 감사와 즐김의 시간이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런 참뜻을 잊은 지 오래인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명절의 참뜻은 소수 콩가루들의 삶 속에서만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설은 지나갔고 추석은 언제 오나, 콩가루는 간절히 그때만 기다린다.(p.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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