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한 아동 주거를 지원하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지만 도시 빈민에게 들어가는 세금은 다들 아까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 반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아동을 앞세웠다"는 공무원의 말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빈자는 국가로부터 먼저 존재가 지워진다. (p. 116)

"… 그 가격이면 깨끗한 거 포기해야 넓은 집 갈 수 있는데, 막말로 요즘 대학생들 공부한다고 바빠서 집에 잘 있지도 않은데, 넓은 건 그렇게 대수가 아니에요."
아마 중개사의 입에서 무심코 나온 진심이 대부분 대학가 원룸 임대사업자의 생각일 것이다. 어차피 표준임대계약 2년도 다 못 채우고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한 대학생들이다. 집을 보는 눈썰미가 뛰어나지 못하다보니, 싸구려 새 가구를 집어넣으면 신축인 줄 알고 비싼 월세도 감당하는 뜨내기 손님일 뿐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집에 살면서 세입자로서 임대인에게 개선을 요구하기보다는 카페, PC방, 도서관, 술집 등 바깥으로 나돌며 자발적의로 집의 외부화를 실천하는 온순한 세입자들. (p. 161)

고통받는 청년의 귀에 맴도는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 경구, 그리하여 버티고 정신승리하는 것은 청년 개인의 몫이다. 이 모든 연쇄 작용이 병든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세상이 얼마나 가혹하게 청년들을 각자도생과 자력구제로 내모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착취해 피라미드 한 층을 올라가는 누군가에 대해 얼마나 윤리적으로 무딘지를. (p. 1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