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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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 속 검사에 대한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는 욕망에 불타올라 비리를 저지르는 검사 vs 정의감이 가득해 비리를 뒤쫓는 검사이다.
아주 똑똑하면서도 딱딱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분들은 왠지 내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 나온다.

검찰청에서 일하는 검사와 직원들의 소박한 동호회 일상, 길가에서 꺾은 할미꽃을 선물받고 뭉클하는 검사의 모습,
회식자리에서 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은 우리네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엄숙한 장소와 어려운 일이라는 선입견에 가려져 전혀 우리와 다른 사람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과 법과 제도로도 상처가 가려지지 않는 이들을 생각하며 방황하고 고뇌하는 모습은 드라마 속에서 보던 모습들이 아닌 인간극장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법정의얼굴들 이라는 책을 읽고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들로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읽었던 기억과는 반대로
이 책에서의 사건들은 좀 웃픈 경우들도 있었다.

#싸움의기술

검사: CCTV를 보니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상대방의 머리채를 잡으시더라구요. 왜 그러신 거에요?

피의자: 제가 원래는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상대방이 웃통을 벗어 던진 겁니다.
멱살을 잡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머리채를 잡아야지.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불법동영상을 촬영해놓고 본인은 눈이 원래 안 보인다며 법정에서 혼신의 연기를 다한 피고인부터 사장을 대신하여 손가락을 잃어가며 한평생을 바친 두부공장의 돈을 횡령한 공장 관리자의 사연까지-
세상은 넓고 인간상은 참으로 다양하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글로 읽는 독자도 신기한데, 직접 만나고 겪는 검사 및 관계자분들은 신기함을 넘어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수많은 감정들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삶은 절대 선과 악, 흑과 백처럼 단순하게 나누어지거나 판단될 수 없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참 많이 느끼는 부분인데 이 책 역시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공감도 많이 되었다.

사장의 역할을 도맡고 손가락을 잃어가면서까지 평생을 헌신해 일군 두부공장 관리자가 자신에게 남은 것이 하나도 없어 횡령을 했던 사건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을 그의 마음을 법이 과연 다 보듬을 수 있을까-

수많은 범죄를 다루면서도 끝까지 사람에 대해 긍정하려는 그 마음,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 이면까지도 세밀히 들여다보려는 그 마음이 느껴져 다정함과 온기를 많이 느낄 수 있었던 책이다.

맞은편에 웅크린 이의 거친 손등에 눈물이 다 마르지 않은 젖은 손을 겹쳐보는 마음, 그것이 연약한 생에 득달같이 들이닥치는 비극을 이해하고 회복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p. 7

지금은 다만 황막한 범죄의 현장일 뿐이지만 어느 과거에는 바다이거나 산이었을지 모를 땅의 역사를, 그 땅 위에 내려앉았을 어둠과 바람과 햇살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기껏해야 유죄와 무죄로만 구축되는
이 옹졸한 세계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품는 일은 번번이 실패하고 말 것이므로. p.306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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