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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 ㅣ 그림책이 참 좋아 26
최숙희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12월
평점 :
참, 만나보고픈 책이었어요. 이 책은요.
사실, 처음에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제목을 보고 아, 엄마의 말[言]이구나. 라고 생각한 채,
엄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도대체 어떤 엄마의 말이 책에 담겨졌을까. 믿고 끝도 없이 궁금해졌답니다.
하지만, 소개글을 읽고, 다시 표지의 일러스트를 보면서, 아. 엄마의 말이 말[言]이 아니라 말[馬]이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말이지요. 도대체 엄마에게는 어떤 말이 있는지, 참으로 궁금해졌답니다.
그래서 만나보고 싶었지요. 딸과 함께 읽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저를 위해 읽어보고픈 마음에서요.
엄마의 말, 최숙희, 책읽는곰, 2014.
다섯 마리의 말을 가슴 속에 포근하게 품고 있는 엄마.
엄마의 품은 이다지도 넓고, 포근합니다.
뭔가 포근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내심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말이 좋았어.
첫 페이지에서 만난 아이는, 딱 우리 꽁알 꼬맹이 또래의 아이입니다.
사실, 이 책이 도착했을 때, 아이들 저녁 시간이라, 큰 아이보고 먼저 이 책을 읽어보라고 했지요.
아이에게 읽어보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했더니
아이가 그럽니다. '엄마, 말 한 마리가 바다로 가버려서 엄마가 슬퍼했대.' 밑도 끝도 없이 이게 무슨 이야기아 싶었지요.
그래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데? 라고 물으니 아이는 해맑게, '응. 엄마가 그럼 우리 밥 다 먹이고 읽어봐.'라고 말합니다.
아이를 재운 후, 조용히 저도 책을 읽어보았답니다.
순한 눈망울도 좋고/보드라운 갈기털도 좋고/무엇보다 굳센 다리가 좋았어/말은 그 다리로 어디든지 갈 수 있으니까.
아이가 말을 좋아한 이유입니다.
그림책을 읽는데, 이유없이 마음이 차분해져 옵니다.
다만 저는 아이가 말을 좋아하고, 그 말을 좋아하는 이유를 읽었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그림이 주는 느낌때문일까요.
그러고보면 정말 그림책의 힘이라는 게 있기는 하나봅니다.
하지만 아이는 어디에도 갈 수 없었어.
말의 형상을 한 구름은 아이가 생각한 대로 자유롭게 여기저기 갈 수 있지요.
하지만 아이는, 현실이라는 땅에 발이 묶여 아무데도 가지 못합니다.
그 말을 바라보는 아이는, 등에 어린 동생을 업고, 양손에 각각 동생 하나씩 손을 잡은채, 동생들을 돌보아야했으니까요.
아이는 고삐에 매인 말처럼/아버지의 말뚝 둘레를 맴돌았어/그렇게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처녀가 되었지.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 아버지를 둔 아이는, 마음 속에 담겨진 꿈보다는 그렇게 집안 일을 도우며 어른으로 자랍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여전히 파란 말이 한 마리 살아있었지요.
그리고 처녀가 된 아이는, 말을 타고 나타난 이웃 총각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
그 말은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입니다.
엄마가 된 아이는, 다섯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산동네 가파른 곳에 내집을 마련합니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은 일상속에서 두둥실 행복을 피워나갑니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던 어느 여름
바다를 좋아하던 망아지 한 마리가 바다로 떠났어/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
엄마는 한 아이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가슴을 움켜쥐고 슬퍼하는 엄마의 모습이. 정말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책장을 넘기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군요.
하지만 엄마는 다시 일어서야만 합니다.
아직 엄마에게는 지켜야할 남은 아이들이 있었으니까요.
막내야, 말 한 마리만 그려 줄래?
엄마는 언젠가부터 크레용을 /손에서 놓지 않는 막내에게 말했어/막내는 서툰 솜씨로 열심히도 그렸지/막내의 손끝에서/엄마의 망아지가 되살아났어.
막내를 바라보는 엄마의 포근한 눈길. 뭔가 꿈꾸는 듯한 표정.
그리고 그 표정을 알지 못한 채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막내.
엄마가 되어서인지, 그 감정을, 그 상황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카네이션 꽃이 핀, 들판에 서 있는 말 한마리.
이젠 그림 하나 하나가 허투루 보이지 않습니다.
푸른 들판을 달리는 망아지가 한 마리 한 마리 늘어 갈수록/엄마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도 한 겹 한 겹 걷혀 갔어.
공교롭게도 삽화 속의 망아지는 모두 다섯입니다.
그리고 엄마의 말들은 모두 엄마의 품을 떠납니다.
엄마가 되고 싶었던 모습으로, 엄마가 살고 싶었던 세상으로 말이지요.
날개를 훨훨 달고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 엄마는 망아지 한 마리를 품에 안은 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엄마는, 하얀 도화지 가득 말을 그립니다.
엄마만의 말을 말이지요.
이 책을 읽으며, 과연 이 책은 누구를 위한 책일까를 놓고 고민을 했답니다.
아이에게 읽어주어도 괜찮은 책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분명, 엄마가 된 딸을 위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무척 많이 했답니다.
그 딸에게 해 주는 엄마 이야기인 것이지요.
혼자 큰 것처럼 잘난 척 하지만, 사실은 엄마의 희생과 도움으로 이렇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반성하게 해 주는 그런 엄마 이야기요.
자신의 꿈은 접고, 오로지 자식을 바라보며 한 세상 살아온 우리 엄마, 그 엄마가 떠오르는 책이었답니다.
책을 보는 내내 예전에 보았던 '친정 엄마'나 '어머니'같은 연극이 떠오르기도 했고,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으니까요.
날개를 달고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말들을, 망아지 한 마리를 안은 채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괜히 우리 엄마가 오버랩되기도 해서... 더 마음이 짠했지요.
나를 위해 이젠 좀 쉬셔도 되는데,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친정 엄마가 말입니다.
엄마에게 오늘은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고 싶어요.
물론 무뚝뚝한 경상도 딸내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툴툴거리겠지만요.
엄마, 고맙습니다.
[이 글은 도치맘까페에서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 읽는 곰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