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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호 열차 - 제5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허혜란 지음, 오승민 그림 / 샘터사 / 2016년 10월
평점 :
[503호 열차]역사에 파묻힌 사람을 만나다
- 503호 열차, 허혜란, 샘터
한국사를 공부하던 때의 일이다. 근현대사, 특히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내게 힘든 부분이었다. 분량의 문제를 떠나 암흑 같은 시대 속에서 살아 남기위한 처절한 투쟁의 역사, 독립이라는 아침이 오길 바라는 사람들의 노력과 염원은 딱딱한 교과서, 참고서 속에서도 느껴졌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정든 사람들과 고향을 등지고 낯선 곳에 터를 잡았던 그들, 삶을 위해 국경을 넘긴 사람들의 여정은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다. 인터넷 강의를 듣던 내가 “아!, 제발!”이라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한숨을 내쉰 때가 있다. 스탈린의 정책으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이야기가 언급된 순간이었다. 강사 역시 안타까움 짙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했다. 서글픈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정말 말 그대로 슬펐다.
이번에 읽은 503호 열차는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소년 사샤의 시선에서 그려진 참혹한 모습은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의 시점처럼 순진하다. 그렇기에 더 크게 전해진다. 그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박탈감, 안타까움, 서러움, 하소연할 곳도 없이 그저 부당함을 감내해야하는 환경은 겪어보지 않는 이들은 모른다.
고향을 떠나 새롭게 둥지를 튼 장소, 하지만 그 장소에서까지 쫓겨나는 신세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 짐승, 화물이 옮겨지는 기차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모여 있다. 화장실 하나 없고 추위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사람들. 열차는 사람이 죽고, 병들고 나약해지는 어두운 장소다. 하지만 흙 한줌 있는 공간이라면 설사 절벽이라도 싹을 틔우는 풀처럼 그렇게 사람들은 버틴다. 서로 부둥켜안고,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만난다. 다시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할머니의 품 안에 있던, 건네받은 씨앗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남아있다는 위로의 상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정 연민의 시선, 불쌍하다는 생각만 가지고 치부할 수 없다. 처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은 현재의 안일한 나의 삶을 뒤돌아보게 했다.
역사는 이긴 사람의 관점에서 그려진다고 한다. 큰 역사를 공부하면 그냥 단순히 ‘고려인 강제이주정책’을 외운다. 하지만 그 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다르다. 권력자의 역사, 있는 사람의 역사가 아닌 우리네 역사, 민초들의 역사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하나의 단어 속에 얽힌 수십만 명의 사람들의 삶을 생각할 수 있었다. 내 나라, 우리 집이 보장되는 환경 속에서 미처 생각할 수 없던 사람들의 인생, 이해하고자 하려고 해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삶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이국 타지에서 조국과 동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고자 노력했다. 내가 발 딛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 나를 보호해주는 내 나라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