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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 귀농 전도사 이병철의 녹색 에세이
이병철 지음 / 이후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세월을 알아갈수록 농사짓고 사는 삶을 동경하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요즘에는 꼭 연배가 많은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나중에 나이가 들면...'으로 시작하는, 삶의 끝자락에 대한 꿈을 풀어놓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 좋고 공기 좋고 무엇보다 인심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알콩달콩 땅에서 자라는 것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고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도시에서의 팍팍한 삶이 우리의 꿈을 해치고 있다는 뜻도 되겠지요.
하지만 늘상 결론은 이랬습니다. "농사는 아무나 짓나?",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농사짓는 일이래.", "요즘에 농사짓는 건 폭탄 짊어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일이야. 한미 FTA 몰라?"
사람에게도, 땅에게도 희망을 주는 일이 요즘같은 때에는 절망이 되는 것 같아 참 막연하게만 여겨졌습니다.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선물받았습니다.
귀농전도사가 쓴 글이라 하길래 농사지으면서 사는 삶에 대한 소박한 글이려니만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물론 농사짓는 사람, 특히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거름같은 이야기가 가득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사는 것도 농사를 짓듯 계절과 절기가 있는지라 구절구절 무릎을 탁~ 치게도 되고 어떤 구절에서는 한없이 시선을 고정시켰다가 하늘 한 번 쳐다보게도 되었습니다.
농사는 혼자 짓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일이다...
이 메시지가 이처럼 편하고 소박하게,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는 책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을 흔들며, 슬쩍 웃음짓게 만들었던 한 구절을 덧붙입니다. 농사짓는 이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 저 '뒷간' 한 번 찾아가보고 싶다, 했습니다.
지난주에는 봉화로 귀농하신 윤길학 님 댁에서 하룻밤을 묵고 왔습니다. 윤길학 님은 엔진 톱과 도끼 한 자루로 당신의 집을 손수 지었다는 분인데 귀틀집을 무척 참하게 지었더군요. 귀농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만 그이에게서 땅을 딛고 자립적인 삶을 일구는 사람의 우뚝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좋고 부러웠습니다. 그 집 뒷간에 이런 쪽지가 붙어 있습니다.
똥은 좋은 거름입니다. 거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물질, 휴지, 기저귀, 생리개 등은 똥통 안에 넣어서는 안 됩니다. 이곳을 시용하시는 분께서는 되도록 많이 싸서 풍성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