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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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친구 다니무라는 밤마다 자신을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린다며 사와키에게도 확인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정말로 사와키의 등 뒤에서도 의문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발소리는 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더 가까워지고, 끝내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온다.
이 미스터리한 발소리는 단순한 환청일까, 아니면 죄를 따라오는 실체 없는 복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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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단순한 호러가 아니라 인간의 죄와 윤리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유는 귀신과 괴담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무서운 것은 평범한 얼굴을 한 인간이었다. 믿었던 가까운 사람들이 배신자가 되고, 연약한 이웃이 학살자가 되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그들이 벌이는 범죄는 너무도 일상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더 끔찍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은 <발소리>였다. 처음에는 다가오는 발소리가 단순한 공포의 상징이자 악역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읽을수록 발소리가 오히려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발소리는 단순히 공포를 조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죄와 그 대가가 물리적으로 되돌아오는 존재였다. 이 단편은 죄를 지은 인간이 끝까지 그 대가를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발소리에 두려워했던 나 자신도 결국 그 음침한 그림자 속에서 죄와 마주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느낀 건, 인간이 만들어내는 공포는 귀신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오래 남는다는 점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배신이 일어나고, 신뢰는 산산조각난다. 단순히 등골이 서늘한 이야기가 아니라 윤리와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죄는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다시 돌아와 그 죄를 지은 사람을 따라붙는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각 단편에서 인간의 어두운 내면과 죄의 무게를 치밀하게 드러낸다. 결말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 밝혀진 진실에도 인물들은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하고, 독자들은 여운 속에 남는다. 특히 <발소리>는 귀신에 대한 공포를 넘어선 죄와 속죄,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허문다. 처음엔 내가 사건을 추리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작가가 설계한 미궁 속을 걸어왔다는 걸 마지막에야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섬뜩한 동시에 묘한 쾌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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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모습을 띤 괴물들이 시대와 이름을 바꾸어 언제 다시 이 나라에 발호할지, 그걸 감시하는 것이 펜을 쥔 자의 소임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p.236

괴물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안의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 잡는다. 우리가 진실을 기록하고 들여다보는 이유는 그 괴물들을 감시하고 다시 태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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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까, 아니면 더욱 깊어질까?

🔦 인간은 정말로 용서받을 수 있는 존재일까?

🔦 나는 나 자신 안의 악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출판사 황금가지(@goldenbough_books)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죽은자에게입이있다 #다카노가즈아키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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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루인 수사의 고백 캐드펠 수사 시리즈 1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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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죽음 문턱에서 깨어난 수도사 할루인. 그가 선택한 길은 속죄의 순례였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인, 그리고 끝내 잃어버린 아이. 깊은 과거에 묻어둔 죄는 살아남은 자신을 매일 갉아먹었다. 신과 자기 자신 앞에서 무릎 꿇기 위해 그는 목발에 의지한 채 떠난다. 고행의 여정을 함께한 캐드펠 수사는 그 길에서 마주친 살인사건을 통해, 속죄와 단죄, 기억과 복수의 경계에 선 진실과 조우하게 된다.

죄는 어떻게 씻을 수 있는가. 그리고 과거는 어디까지 현재를 결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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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속죄로 시작된다. 병상에서 죽음을 맞이한 줄로만 알았던 할루인 수사는 기적처럼 깨어난다. 그는 살아 돌아온 몸으로 자신을 괴롭혀온 죄를 마주하러 길을 나선다. 캐드펠 수사와 함께 떠난 그 길은 단순한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이 만들어낸 자발적 형벌이었다.

놀라웠던 건 이 책이 미스터리임에도 불구하고 2/3를 넘기도록 본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처음에 할루인의 추락이 누군가의 살인 계획일 거라 단정하고 수도원내 얽히고 섥힌 원한 관계를 풀어나갈거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책은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그건 조용한 로드무비였고, 두 수도사의 마음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엇갈린 사연, 스쳐가는 인연들이 하나둘 마음에 남을 때쯤 마침내 한 명이 죽는다. 그리고 모든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우연처럼 흘러갔던 모든 장면이 실은 치밀하게 계산된 이야기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나는 작가의 손길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지막 100페이지는 정말 숨을 쉴 틈도 없이 몰입하게 만든다. 순례와 살인이라는 전혀 다른 결이 결말에서 절묘하게 얽혀들어가는 방식은 도저히 300페이지짜리 짧은 소설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밀도 있고 견고하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할루인의 죄의식에 대한 묘사다. 그는 죄를 고백했지만 고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의 사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통을 감내하고자 한다. 단죄받지 못한 죄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로밖에 해결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것이 수도복을 입은 인간의 너무도 인간적인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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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행 없는 사면을 통해 슬그머니 죄를 벗으려는 짓은 용납하지 못해요.” -p.53

고해는 고통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의지로 완성된다. 할루인의 죄는 하나였지만 이 소설은 그 죄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들 각각의 방식으로 읽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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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루인 수사의 속죄는 어떤 방식으로 ‘인간적인’가? 그는 진심으로 신을 향해 갔을까, 아니면 인간인 자신을 벌하기 위해 순례를 떠난 것일까?

🔦 속죄와 구원은 항상 함께일까? 혹은 누군가에게 속죄는 평생 끝나지 않는 고행일 수 있을까?

🔦 책 전반에 흩뿌려진 ‘조용한 복선’들은 어떤 장면에서 감지되었는가? 반전을 예감한 순간이 있었는가?


*출판사 #북하우스 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캐드펠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할루인수사의고백 #엘리스피터스 #캐드펠수사시리즈 #추리소설 #추리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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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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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Artificial Friend)는 인간 아이의 친구가 되기 위해 설계된 존재다. 클라라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관찰력이 뛰어나고 감정에 민감한 소녀형 AF다. 진열대에서 인간의 세계를 배우는 클라라는 매장 너머로 지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을 데려가 줄 ‘그 아이’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날, 약속처럼 다가온 소녀 조시.

하지만 클라라가 마침내 조시의 집에 가게 된 그날부터 이야기는 예상과 다른 길로 흘러간다. 건강이 위태로운 조시, 그녀를 둘러싼 비밀스러운 실험, 그리고 아이의 자리를 대체하려는 시도까지. 인간의 감정과 이기심, 사랑과 기술이 뒤엉킨 풍경 속에서 클라라는 묵묵히 한 가지를 바란다.

조시가 다시 건강해지기를
조시의 곁에 영원히 있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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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의 클라라는 마치 동화 속 주인공처럼 순수하고 명랑했다. 매장 안에서 바깥세상을 탐색하고 인간의 행동을 배워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따뜻한 서사였다. 특히 조시를 기다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클라라의 판매를 미룬 매니저의 결정은 상업적 관계를 넘어선 인간적인 유대를 느끼게 했다. 그 장면은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조시의 집에 도착한 이후, 나는 점점 불편한 감정에 휩싸였다. 조시는 자신을 향해 절대적인 헌신을 보여주는 클라라를 친구라기보다는 편리한 도구로 여기고 있었다. 향상된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클라라를 감추려 하고, 릭을 외면하며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 한다. 클라라는 조시에게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를 이해하려 하고, 조시가 행복해지기만을 바란다.

책을 읽는 내내 클라라는 조시를 위해 존재한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에 가까웠다. 조시는 건강을 회복하고 대학에 진학하며 클라라와 헤어지지만, 그 작별엔 일만의 아쉬움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클라라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햇살 아래에서 조용히 보낸다.

이 이야기는 사랑이나 우정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품고 있다. 인간이 기계에게 바라는 무한한 헌신, 그리고 그 헌신이 당연시될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 <클라라와 태양>은 결국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기계의 이야기이며,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본질에 대한 통렬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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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시 내면에 클라라가 계속 이어 나갈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두번째 조시는 모조품이 아니에요. 정확히 똑같은 존재니까 당신이 지금 조시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그 애를 사랑하는 게 당연한 거예요.” (p.308)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기억인가, 감정인가, 아니면 타인을 향한 마음일까. 이 문장을 읽는 순간, 클라라가 정말 인간보다 더 순수하게 인간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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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라는 정말로 ‘사랑’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인간의 감정과 그녀의 헌신은 동일 선상에 놓일 수 있을까?

🔦 조시는 클라라를 진심으로 친구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이용 가능한 존재로 여긴 걸까?

🔦 만약 당신이 조시의 어머니였다면, ‘두 번째 조시’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 로봇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다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의는 어디서부터 다시 써야 할까?

#클라라와태양 #가즈오이시구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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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워커
프리다 맥파든 지음, 최주원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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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워커》는 독자를 철저히 오도하는 미스터리 심리스릴러다. 매일 아침 8시 45분이면 어김없이 출근하던 돈 쉬프가 어느 날 사라진다. 8시 46분이 되었을 때에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동료 내털리는 불안한 마음에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바닥 가득 번진 핏자국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뜻밖에도 내털리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누구보다 돈을 걱정했던 그녀였기에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내털리의 말과 표정, 기억의 빈틈이 서서히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더 코워커》는 내털리의 시점과 돈의 이메일이라는 이중 구조로 전개된다. 걱정 많은 동료처럼 보였던 그녀는 돈이 남긴 기록을 따라가며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독자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추리하며 이야기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하지만 결국 작가는 독자가 선택했다고 믿는 모든 사고의 방향을 치밀하게 설계해 놓았다.

프리다 맥파든의 힘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반전의 냄새를 빠르게 감지하는 독자조차 마지막 문장을 덮는 순간에야 자신이 처음부터 작가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더 코워커》는 ‘누가 범인인가’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 사람을 괴물로 규정하고 싶어하는 사회의 욕망, 죄와 기억, 그리고 피해와 가해의 뒤섞인 서사를 정교하게 엮어낸다. 친절함이 위장일 수 있다는 두려움,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로 지목되는 아이러니, 그리고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오랫동안 남는다.

마지막까지 독자의 사고를 조종한 이 이야기는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털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누군가를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 우리는 이미 그 미로에 들어서 있었다.



@woojoos_story 모집 #해피북스투유 @happybooks2you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_장르문학방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더코워커 #프리다맥파든 #해피북스투유
#우주클럽_장르문학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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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의 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4
조예은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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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의 유령》은 무서운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책장을 덮을 즈음엔 가슴 깊은 울림이 더 오래 남았다. 외증조모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서른 살이 되는 해에 1년간 그 집에 살아달라”는 유언을 따라 적산가옥에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낯선 이름 ‘가네모토 유타카’. 처음엔 그저 귀신인 줄 알았다. 무서운 존재, 혹은 한 맺힌 망령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읽을수록 가장 오래 마음이 닿았던 인물은 오히려 그 유령이었다.

유타카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학대와 방임 속에서 자란 채 자신을 미워하게 된 아이였고, 사랑을 배우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렀지만 끝내 해방되지 못한 존재였다. 외증조모 준영과의 인연은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따뜻한 체온이었고, 그 기억 때문에 그는 집을 떠나지 못했다. 유령이 되어도 붙잡고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려 했던 존재. 그는 망령이 아니라 수호신이었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긴장은 높아지지만,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극도 아니고 생존 스릴러도 아니다. 《적산가옥의 유령》은 병든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그 집에 깃든 공포는 괴물의 등장이 아니라 기억과 정체성의 무게에서 비롯된다. 무섭다기보다 서늘하고, 찝찝하기보다 축축하다. 마지막 장면을 읽고 나면 독자는 손끝에 남은 감정의 잔여물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그 집의 일부가 되어 나오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 소설은 ‘무서운 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떠나지 못한 존재, 혹은 떠나지 못하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게 이 집은 저주의 장소이기보다, 슬픔의 무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 마음속 어딘가에 하나쯤은 자신만의 적산가옥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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