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는 회초리를 휘두르는 송인문의 얼굴과 금테 안경 속의 길게 찢어진 눈이, 어느 때는 엄마의 후들거리던 종아리와 마주 대고 빌던 두 손, 눈물로 번들거리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용서해달라고 덜덜 떨며 빌건 목소리가 머릿속에 떠다녔다. 무엇보다 우는자신의 모습을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왜 말릴 생각도 못하고 울고만 있었을까. 송인문과 엄마 사이에 앉아 맥없이 울고 있는 열네 살의 자신이 보이면 인영은 눈을 부릅떴다. 정신을 차리라고 어깨를 흔들어 깨우고 싶었다. 처음 그 장면이 떠올랐을 때는 슬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화가 나고 몸이 떨렸다. - P237
인영은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종아리에 연고를 바르는 걸 지켜본 뒤 침대에 누웠다. 방 밖에서 나는 작은 소음에도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집을 나갈까봐, 자신만 남겨 두고 새벽에 사라져 버릴까 봐 깊이 잠들지 못했다. 일상이 멈출까 봐 두려운 것만큼이나 그런일이 일어난 뒤에도 같이 밥을 먹고 찌개의 간과 바지다림질에 대해 얘기하고 멀쩡한 얼굴로 출근하고 학교에 가는 일상이 이어진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 P238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집과 부모와 생활이 깨지 않는 꿈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송영로와 인영의 몫까지 들볶이고 있을 엄마를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들이 한집에 인영의 머릿속에 모여 있었다. - P243
결혼 초에 송영로는 화가 나면 방문을 세게 닫고 소파 쿠션이나 텔레비전 리모컨을 바닥에 던졌다. 왜 저런식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횟수가 점점 늘면서 새언니는 물건은 정돈할 수있지만 훼손된 감정은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닫게게 되었다. - P253
예전에도 송인문에게 혼난 뒤 울고 있으면 같이 욕하고 편을 들어 주다가도 마지막에는 아빠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그래도 우리가 아빠 덕에 이만큼 먹고사는 거라며 인영을 달랬다. 송영로에 대해서도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했다. 오빠 덕분에, 오빠가 있어서우리가 조금은 편해진 거 아니냐. 엄마의 말에 인영은 뭔가를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맞는 거 못 봤어?? 언제까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 거야? 인영이 소리를 지르면 엄마는 어깨를 움츠렸다. 인영은 누군가의 돈이나 힘에 기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엄마와 자신의 삶을 깊이 경멸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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