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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노든도 바다에 가면 다시 바람보다 빨리 달릴 수있을 거예요."
노든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바다에 도착하면, 나는 더는 같이 갈 수 없어. 너 혼자 가야 돼."
"걱정 마세요. 혼자서도 잘 갈 수 있어요."
나는 그때, 헤어짐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단지 바다에 도착하는 상상으로 들떠 있었다. 그래서 한껏 거들먹거리면서 자신 있게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노든은 진심으로 대견스러워했다. - P85

"조금만 더 참아 봐요!"
나는 노든을 다그쳤다.
"미안하지만 이게 내 최선이야."
노든은 무안해하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코뿔소지 펭귄이 아니라고"
나는 물속에서 느낀 것을 노든에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그리고 노든과 내가 다르다는 것이 너무 서운했다.
"그치만 나한테는 노든밖에 없단 말이에요."
"나도 그래."
눈을 떨구고 있던 노든이 대답했다.
그때 노든의 대답이 얼마나 기적적인 것이었는지, 나는 알지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 P94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노든에게 말했다.
"노든, 복수하지 말아요. 그냥 나랑 같이 살아요"
내 말에 노든은 소리 없이 울었다. 노든이 울어서 나도 눈물이났다. 우리는 상처투성이였고, 지쳤고,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되었지만 복수를 할 수 없는 흰바위코뿔소와 불운한 검은 점이 박힌알에서 목숨을 빚지고 태어난 어린 펭귄이었지만,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 - P104

긴긴밤이었다.
날이 밝아도 노든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나처럼 노든과 나 둘뿐이었다. 그랬지, 우리는 언제나 서로밖에 없었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노든이 아프다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노든은 항상 뭐든지 어떻게든 해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P109

나는 절벽 위에서 한참 동안 파란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바다는 너무나 거대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작았다. 바다는 이루 말할수 없이 아름다웠지만, 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나간 노든의 아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죽지 않은연인을 뒤로하고 알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던 치쿠의 심정을, 그리고 치쿠와 눈을 마주쳤던 웜보의 마음을, 혼자 탈출하면 무슨재미가 있겠느냐던 앙가부의 마음을, 코끼리들과 작별을 결심하던 노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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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인간의 결정력은 어느 정도까지 확장될까? 우리는 물건을 사도록 얼마나 조종당하고 있으며, 그것이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늘 우리 자신의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무엇을 살 의지력보다 사지 않는 의지력이 더 필요하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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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는 회초리를 휘두르는 송인문의 얼굴과 금테 안경 속의 길게 찢어진 눈이, 어느 때는 엄마의 후들거리던 종아리와 마주 대고 빌던 두 손, 눈물로 번들거리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용서해달라고 덜덜 떨며 빌건 목소리가 머릿속에 떠다녔다. 무엇보다 우는자신의 모습을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왜 말릴 생각도 못하고 울고만 있었을까. 송인문과 엄마 사이에 앉아 맥없이 울고 있는 열네 살의 자신이 보이면 인영은 눈을 부릅떴다. 정신을 차리라고 어깨를 흔들어 깨우고 싶었다.
처음 그 장면이 떠올랐을 때는 슬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화가 나고 몸이 떨렸다. - P237

인영은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종아리에 연고를 바르는 걸 지켜본 뒤 침대에 누웠다. 방 밖에서 나는 작은 소음에도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집을 나갈까봐, 자신만 남겨 두고 새벽에 사라져 버릴까 봐 깊이 잠들지 못했다. 일상이 멈출까 봐 두려운 것만큼이나 그런일이 일어난 뒤에도 같이 밥을 먹고 찌개의 간과 바지다림질에 대해 얘기하고 멀쩡한 얼굴로 출근하고 학교에 가는 일상이 이어진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 P238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집과 부모와 생활이 깨지 않는 꿈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송영로와 인영의 몫까지 들볶이고 있을 엄마를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들이 한집에 인영의 머릿속에 모여 있었다. - P243

결혼 초에 송영로는 화가 나면 방문을 세게 닫고 소파 쿠션이나 텔레비전 리모컨을 바닥에 던졌다. 왜 저런식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횟수가 점점 늘면서 새언니는 물건은 정돈할 수있지만 훼손된 감정은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닫게게 되었다. - P253

예전에도 송인문에게 혼난 뒤 울고 있으면 같이 욕하고 편을 들어 주다가도 마지막에는 아빠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그래도 우리가 아빠 덕에 이만큼 먹고사는 거라며 인영을 달랬다. 송영로에 대해서도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했다. 오빠 덕분에, 오빠가 있어서우리가 조금은 편해진 거 아니냐. 엄마의 말에 인영은 뭔가를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맞는 거 못 봤어?? 언제까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 거야? 인영이 소리를 지르면 엄마는 어깨를 움츠렸다. 인영은 누군가의 돈이나 힘에 기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엄마와 자신의 삶을 깊이 경멸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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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를 계속하면 나의 글이 되는순간이 온다. 필사 노트에 필사 문구를 적다가 내가 깨달은 바를 적으면 된다. 필사의 문장과 나의 경험을 연결한 느낌을 적으면 내 글이 만들어진다. - P157

구체적인 경험을 적으면 한 줄이 세 줄이 된다. 세 줄이 모이면 백 줄이 된다. 글을 길게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남이 읽기에 쉬운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면 글은 막힘없이 써진다. - P162

많은 사람이 독서를 하는 행위만으로 변화를 바란다.
하지만 그건 걸음마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건 독서 후 실행이다. 실행하는 힘은 기록으로부터 시작한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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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을 위해 뭔가를 하려 할 때 대단히 많은 벽에부딪친다" 는 점은 가난이 가진 질긴 속성이다. - P74

한바탕 난장을 피운 뒤 돌아누운 내게 엄마는 자신도 성폭력 생존자라고 말했다. 엄마가 고른 단어는 생존자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렇게 번역해 들었다. 엄마는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자원화‘해야 하는지 몰랐고, 입이 있으되 말하지 못했다. 대신 엄마가 배운 건 "그러고도 다 살아"라는 체념이었다. 엄마도 어렸고 약했다는 걸 이해하는 데는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 P94

강릉에서 마당냥으로 키워지며 제 수명보다 짧게 살고 죽었을지 모를 고양이가 여러 우연이 복잡하게 작용해 2017년 여름, 우리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해 이동장을 내려놓자마자 원래 제집이었던 듯 주저 없이 내 다리사이에 풀썩 자리 잡는 고양이를 보며, 사랑에 모양이있다면 고양이처럼 생겼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 P104

하지만 사람을 기르거나 길렀던 이들은 그 같은 비교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인정을 구하지 않았는데, 인정하지 않았다. 비인간 존재에 대한 나의 배움과 애정은 쉽게 열등한 취급을 받았다. - P109

결혼도 다수가 선택한 제도와 관계 맺기일 뿐인데왜 유독 ‘우월한 선택이 되는 걸까. 여타 다른 제도도마찬가지지만 결혼이 불완전한 제도임은 혼인신고, 동성혼 불허, 이혼 숙려 등 결혼 유지를 위한 보완적인제도를 운용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사람들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선택지들이사람들의 삶을 보호해 줄 수도 있다면, 결혼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돌봄 관계들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설계할 수도 있지 않을까.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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