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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회피하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파도는 마주보기보다 등을 돌리는 편이
차라리 순한 항해라는 것을 알기에,
반 년간 등지고 표류했던 문제가 하나 있다.
키클롭스의 동굴같은 문제.
이 앞의 문제를 헤쳐나가지 않으면 도무지 햇빛을 보기 힘든..
오귀기아의 섬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음을 안대도,
떠나지 못하는 날들은 있는 법.
더는 미룰 수 없는 마음의 순간이 기어이 찾아왔고,
나는 마침내 그 거인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결정했다.
그 결정을 하는 게 한 몫한 책이,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이다.
오디세우스가 갑판 위에서 하늘 을 향해 분노하거나 허공에 주먹질하지 않았을 리 없다 고 생각한다. 그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그 모든 짓들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분노는 파도처럼 왔다가 파도처럼 물러났고, 그는 결국 다시 돛을 올렸다.
나는 이 장면에서 오래 멈춰 선다. 원망은 정당하다. 억울함도 정당하다.
그러나 억울함이 정당하다는 이유만으로 분노에 오래 머무는 것이
과연 생존에 이로운가.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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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에 이롭냐니.
결코 아니었다. 나는 숨막히게 매일을 괴로워했으므로.
키클롭스는 매일같이 내 꿈 속에 찾아왔으므로.
오늘을 만나기 전 어제는 하루종일 시름시름 앓았으므로.
오늘 마주한 괴물의 눈은 그저 작은 눈 한 알이었다.
그럼에도 억눌러온 설움은 한꺼번에 밀려왔고,
가슴은 여전히 묵직하고 목 끝까지 삼켜온 울음이 차올랐다.
토해내고 싶은 먹물이었으나, 끝끝내 참아낸 나는
오늘을 견뎠고,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단단해지는 마음을 느꼈다.
폭풍이 지나 간 자리에 다시 돛을 올리는 이의 심정이 이러할까.
십 년을 떠돌고서야 마침내 이타카에 도착한 그 사내의.. 심정이 말이다.
호메로스가 수 천년을 건너와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아마 바로 이런 것일게다.
우리는 저마다 빠져나갈 수 없는 해협 하나씩을 품고 산다.
그 앞에서 도망칠 지, 다시 노를 저을지.
매일 수없이 많은 문제들 앞에 새로운 선택을 하며.
이 책은 그 오래된 항해를 오늘의 언어로 되짚어 주었고,
온전히 내게 와 닿았다.
덕분에 내가 건넌 그 바다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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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변덕이 언제 끝날지 우리는 모른다.
언제 바람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바람이 바뀌었을 때 즉시 나아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돛을 손질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준비된 자에게만 순풍은 의미가 있다.
p.21
내가 만든 것은 실패해도 내 안에 흔적으로 남는다.
그 흔적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뼈대가 된다.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도착 했을 때
그를 오디세우스로 만들어준 것은 결국 그 뼈대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