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 상상 청소년소설 1
이만교 지음 / 상상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읽었을 때는 작가가 듣고 경험한 ‘이야기’가 어떻게 ‘이야기(소설)’로 만들어지고 전해지는지에 관한 ‘이야기’구나! 했는데, 두 번째 읽을 때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소제목들은 심플하다.

1. 이야기를 짓다
2. 이야기를 팔다
3. 이야기를 뺏기다
4. 이야기를 되찾다
5. 이야기를 살다

즉, 아주 오랜 옛날에 전기수(傳奇叟: 조선 시대에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부르던 말. 직역하면 ‘이야기를 전해주는 기이한 늙은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가진 이야기 장수가 세상 사람들의 떠도는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지어 팔다가 백성들을 현혹하고 나라의 법도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관청에 이야기를 빼앗기자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되찾고 자기만의 이야기 길을 떠난다는 이야기이다.

전래동화 같은 청소년소설이지만 오늘 ‘나’의 이야기를 살고 싶은 사십 대(오십에 가까운) 어른의 눈으로 읽어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문장들이다. 그것은 나에게 해주고 싶은 위로와 용기의 말들이면서 삶이 고되고 마음 아프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주고 싶은 눈물과 희망의 말들이다.

-------------------------------------------------------------------------

p.44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누구든 붙잡고 털어놓고 싶은 법이다.

p.45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조차, 아니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일수록, 그렇게 되어 버린 그만의 슬픔이 있었다.

p.46
이야기를 찾아다니다 보니 이제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움막에서 살든 기와집에서 살든 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지어 갖고 사는지가 기수에게는 더 중요해 보였다.

p.106
이야기 중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읽어 봐야 비로소 앞서 겪은 일들이 정말로 불행한 일이었는지, 아니면 행운이었는지 드러나지 않던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앞서 겪은 불운들이 알고 보니 좋은 일을 몰고 오는 행운의 시작으로 변할 때까지 계속 살아보는 길밖에 없지 않던가.

p.110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이, 사실은 누군가 지어낸 하나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내가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지금 독자가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내가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라면 주인공이 어떻게 행동하기를 바랄까?

p.132
선우야, 이야기[생각문장]를 함부로 만들지 말거라. 어쩌면 우리는 오늘 고생을 한 게 아닌지 모른다. (인정 없는) 노파 덕분에 차라리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콩을 먹어 본 날인지 모른다. 그러니 그가 천벌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지 모른다.

p.137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남는 한, 네 이름도 함께 남을 것이다. 그러니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거라.

p.190
사람은 어디에 있든 자기가 만든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어 있지. 내 이야기는 예서 끝났으니, 이제는 네가 가 보고 싶은 곳으로 가 보자꾸나.

--------------------------------------------------------------------------

<결혼은, 미친 짓이다> 소설과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작가님의 이름도 잘 몰랐지만 책날개의 작가 사진을 보며 비슷한 연배의 가난한 대학 시간 강사인 주인공이 작가의 페르소나이겠거니.. 하며 보았다. 대학 강사답게 자본주의의 생리를 좇는 현대인들에 대한 수다스럽고 지적이며 냉소적인 말장난과 삐딱한 시선이 매력 있고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 정도는 현대 작가라면 누구나? 젠체하며 제기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물론 그 문제를 소리 내어 말하는 문장의 단단함과 아름다움은 별도로 하고.

그 후 20여년이 지난 작년과 올해 우연한 계기로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참 따뜻한 감성과 열정을 지니셨구나.. 하고 느꼈는데 작가님의 페이스북 글과 책을 읽으며 내가 작가님에 대해 십분의 일도 몰랐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선 시대로 가장한 우리 시대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의 이야기인 <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IMF적 사회 상황을 한 가족의 사건으로 다룬 <머꼬네집에 놀러 올래>, 부당한 재개발 보상 정책으로 벌어진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까지..

이만교 작가님은 이야기를 짓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종군 작가가 되어버리는, 그리고나선 이야기를 읽은 독자가 저마다 주인공이 되어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가도록 길을 안내해주는 이야기꾼 전기수였다. 그러면서도 이 무거운 이야기들에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마음들이 눈물을 쏟지 않게, 가슴이 짓눌리지 않게 언제나 유쾌한 웃음과 개구지고 천진난만한 유머를 잊지 않는 모습이 나의 어린 시절 재미있고 다정했던 대학생 외삼촌 같다.

이만교 선생님~
‘행복한 나의 이야기’를 짓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