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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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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만 같다면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메리토크라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많은 몰랐던 부분과, 알았지만 깨닫지는 못했던 부분을 지적해 주었다. 이 책의 많은 내용에 동감했고 포퓰리즘적 분노에 대해 해결책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러나 한 대목에 대해서는 시선이 엇나가 보였다. 앨리 러셀 혹실드의 『자기 땅의 이방인들』을 인용하면서 하류층 백인들의 박탈감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하위 90퍼센트의 사람들에게 아메리칸 드림 머신은 자동화, 해외 아웃소싱, 다문화 정착민들의 위력 등등으로 작동이 멈춰버렸다. 동시에 그들 90퍼센트는 백인 대 유색인종 사이의 증폭된 경쟁(일자리, 인정, 정부 지원금 등등)에 휘말려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차례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고 여긴 사람들이 (흑인, 여성, 이민자, 난민 등에게) ‘새치기를 당했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 분개했으며,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정치지도자들에게도 분노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이 새치기쟁이들뿐 아니라, 본인들을 인종주의자, 보수 꼴통Rednecks, 백인 쓰레기라고 비하하는 엘리트들에게 불만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이방인이 되었다. 그들은 남들이 바라보는 대로 자기 자신을 정의할 수가 없어졌다. 남들의 시선과 개인적 명예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려면 뭔가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그리고 그렇게 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들의 잘못은 없는데도 뭔가 모를 이유로, 그들은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가장 먼저 하고싶은 말은 ‘새치기 당한 느낌’을 해결해줘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을 사회적 공동체적 유대감으로 해결하지 말아야 하고 외려 부셔서 없애야 한다. 충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칭얼거림은 받아 줄 필요가 없다. 새치기 당했다고 여기는 사람을 아무리 동정적으로 바라봐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여전히 차별주의자다.

한국에도 비슷한 ‘새치기 당한 느낌’을 받는 사람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여자인 이부진이 남자인 나보다 부자이므로 한국에는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허수아비같은 주장을 놓고 얘기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귀기울여보면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는 변주되서 상당히 많이 들려온다. “내가 아는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인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버니까 차별이 없다”, “여성 대통령도 가능한데 무슨 소리냐” 이런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한 집단에 소속된 사람이 조금이라도 특출나는 상황이 생길 때 과하게 집중한다. 그에게 있어 이 일은 아주 특수한 행위고 세상이 뒤집힐만한 충격이다. 그리하여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억울한 감정을 품게 된다. 자신은 타고 난 조건 때문에 이보다 더 나은 취급을 받아야만 한다는 거만함을 품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백인남성기득권이 상처받는단 사실이 아니다. 그런 소리에 상처 받을 정도로 과하게 자아가 비대해지도록 사회가 백인남성에게 부여한 이미지가 더욱 문제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지 않고 유색인종이나 장애인 여성등과 같이 경쟁해야 한다는 소리에 심적인 충격을 받는 것 자체가 문제다. 누구나 독특하고 소중하며 이성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게 문제다.

메리토크라시로 인해서 상처받은 사람들중에 주목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차별을 정당화하는데에 이용되어 상처받은 사람이다. 사회를 단순하게 네 개의 집단으로 나눠보자.

A. 백인 능력자

B. 백인 무능력자

C. 유색인종 능력자

D. 유색인종 무능력자

옛날에는 A-B-C-D의 체계가 유지되면서 백인은 아무리 무능력하다고 하더라도 유색인종보다는 더 나은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능력주의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A-C-B-D의 모습으로 구도는 바뀌게 되었다. B인 백인 무능력자는 C 유색인종 능력자에게 새치기를 당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여기에서 D 또한 C가 기존의 벽을 허물면서 나아가고 있는 도중에 자신은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 또한 느낀다. D는 자신의 소속집단에 대한 부채감 또한 같이 느끼게 된다. 세상이 유색인종도 더욱 잘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세상의 편견을 깨트린 영웅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그러나 D는 영웅적인 역할을 할 수 없고, 역시 유색인종은 열등하다는 편견을 강화시키는데에 자신이 한 몫을 하고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느끼는 자괴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능력주의라는 탈을 썼지만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C또한 불쾌감을 느낀다. A는 C에게, B는 D에게, 그래도 자신보다 너가 아래에 있는 까닭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한 것이, 실제로 공정하지 않더라도 공정하다는 착각 때문에 일어나는 여러 문제이지 않은가. 실제로는 공정하지 않은데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가 위대한 줄 알고, 실패한 사람들이 자기가 잘못된 줄 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런 상황에서는 C와 D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경우, 그것이 차별적인 까닭 때문이더라도 자신의 능력부족으로 여기게 된다거나 하는 문제에 더욱 주목했어야 한다고 본다.

미국 우파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해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공정하다는 착각에 대해서 보다는 그들이 왜 ‘새치기 당한 느낌’을 느끼게 됐는지, 그들이 느끼는 새치기 당하기 이전에 자신이 응당 받았어야 할 대우가 뭔지에 대해 집중하는게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원래 위치가 어디라고 생각했기에 새치기를 당한 것일까. 마이클 샌델이 인용한 앨리 러셀 혹실드의 책의 제목도 여러 의문이 들게 만든다. 책 제목에서 미국의 하류층 백인들을 표현할 때 ‘Strangers in their own land’라고 하는데 미국의 백인들이 그 땅을 ‘Their own land’라고 할 자격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국원주민들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미국 원주민 타령이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려 한다면 ‘Strangers in their own land’라고 미국 우파를 정의하는 것 또한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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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 많이 있다. 지나치게 기싸움에 에너지를 쏟는다던가 말을 쓸데없이 비비 꼰다던가. 그것 말고도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 여럿 있는데 나는 '저 인간이 왜 저럴까' 싶으면 그 의문을 해소하고자 항상 노력을 한다. 사람의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항상 많다. 그런 관심의 연장선으로 최근에 두 책을 읽었다.

심리학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다시 되새기는 사실이 있다. 정신의 문제는 스펙트럼과 같아서 어디서부터 정상인이고 어디서부터 비정상인이라고 가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정 성향에 대해서 모두들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가 그게 과한가 아닌가에 따라서 이게 문제가 되느냐 안 되느냐, 치유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나누어진다. 이런 점들을 살펴보다 보면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의 태도도 나한테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동시에 항상 완벽하게 정상하고 건강한 인간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다소 비인간적으로 보이고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소통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자의 인간관계'는 소위 나쁜 의미의 '여자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이다. 누군가 여자들은 이래서~라고 말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입장이지만, 그렇게 정형화된 나쁜 의미의 여자 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 실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전형은 아니더라도 그 파편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굉장히 많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어느 정도 해당된다는 것을 느끼며 자기반성을 할 수 있었다.

책은 앞부분에 아주 분명한 어조로 왜 이런 성격이 생겨나게 되는지 이야기하고 넘어간다. 여성이 사회에서 선택받는 성이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언갈 성취해 내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를 떨어트리고 밀어내는 데에 열중해서 누군가의 눈에 들고 간택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책 속에서 이런 성격의 사람을 지칭할 때 '뒤틀린 여자'라는 단어로 지칭한다. '뒤틀린 여자'는 사회가 만들어 낸 산물이다.

각 상황별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를 풀어내는데 굉장히 쉽게 적혀져 있어서 읽는 속도가 빠르다. 읽으면서 아, 이게 요점이구나 싶은 점이 몇 개 있었는데 나르시시즘의 심리학에서 나르시시스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설명할 때에도 유사점이 보여서 굉장히 신기했다. 다른 심리상태에 대해서 보편화될 수 있는 요소구나 싶기도 했고 아니면 저런 뒤틀린 여자가 나르시시스트인건가 싶기도 했다.

'나르시시즘의 심리학'에서는 당연히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나르시시스트 스스로가 책을 읽을 걸 기대하고 쓴 책은 아니고 그 사람들 옆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다. 각각의 상황별과 각각의 관계별로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들은 자신의 허황된 이미지를 위해서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한다는 게 가장 특이한 점이다. 그리고 그 현실의 왜곡을 진실의 빛으로 드러나게 하는 상황에 대해서 굉장히 분개한다.

나르시시트와 얽히는 사람은 초반에 그들의 과장된 후광에 속아넘어가서 잠시 동조하게 될 수 있지만, 나르시시스트와 오랫동안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관계는 금방 파탄 난다. 그들은 타인을 바라볼 때 선역 아니면 악역으로만 단순하게 바라본다. 자신의 기준에 선역에 든 사람은 무한하게 이상화하고 악역으로 판단하는 순간 매몰차게 깎아내린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기에 나르시시스트가 칭찬과 욕을 극단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기 일쑤다.

그 둘을 대할 때 대처법은 각 책이 말한 게 굉장히 유사했다. 뒤틀린 여자나 나르시시스트나 대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의 논리에 동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뒤틀린 기준으로 판단하고 상대방을 자꾸 평가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치졸한 눈치 주기와 같은 방법으로 공격하려 든다. 그러나 그 치졸한 눈치 주기, 눈치싸움의 판에 뛰어드는 순간 우리는 이길 수 없다. 그들은 그것을 진심으로 즐기면서 오랜 시간 해 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담담하고 솔직한 언어로 곧게 대하면 된다. 그들은 잠시 혼란에 빠지지만 그런 일관된 태도에 안도감을 느끼고 경쟁자가 아닌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다.

상대방이 지나치게 미쳤으면 내가 고치려는 태도는 아예 포기하는 게 좋다. 전문가도 아닌 사람은 거리를 두고 상황을 피하는 게 좋은 선택일 수 있다는 조언이 공통적이었다.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만 말할 줄 아는 게 얼마나 좋은 태도인지 배울 수 있었다. 원래도 내 머릿속에 항상 떠다니던 생각이 있었는데 이 두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맞는 말이라는 체감을 했다. '최고의 처세술은 착하게 사는 거다'라는 생각이다. 이상한 잡기술을 처세술이라고 달달 외우고 돌아다녀 봤자 거기에 에너지 쏟을 바에 그냥 단순하고 착하게 살고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는 게 낫다. 이 최상의 처세술을 내가 잘 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항상 그게 옳은 방향이라는 생각은 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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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인간관계 - 무리짓는 여자들의 관계 심리학
미즈시마 히로코 지음, 박선영 옮김 / 눈코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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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품 안에 어느 정도 뒤틀린 여자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이 무섭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난 뒤틀린 여자 아닌데? 싶어도 한 번씩 읽어보면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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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7
헤르만 헤세 지음, 김누리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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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인 향기를 풍기는 글이다. 읽으면서도 수시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헤세의 다른 저작을 전부 읽은 다음에 다시 여기로 돌아온다면 더 많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헤세에 정통한 사람은 아닌지라 아쉬움이 남았다. 나중에 다시 읽으면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겠지. 참 이상한 책인 게, 문장 문장은 흥미로웠는데 전체적인 틀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이렇게 파편만 마음에 들고 전체적인 그림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을까 신기한 감정이 들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임을 제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인데... 하리 할러는 태생적으로 엄숙한 사람이어서 가벼운 것, 유희 등을 싫어하며 피해 다니던 사람이다. 그 모든 걸 극복하면서 삶의 다면성에는 가벼움과 유희도 포함되어 있음을 깨달으려고 노력한다. 글이 쓰여있는 부분까지는 하리가 자아를 통합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깨달았을 뿐 제대로 된 통합에 이르지는 못한다.

숭고하려고만 하는 것이 천박한 것. 천박하다고 여겼던 가벼운 것과 유머에도 진리가 있는 것. 유희 속에서 진지함을 꺼낸다면 현실의 때를 묻혀 죽여버리는 것.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이런 건가 싶었다. 그런데 이 글의 묘사 방식이 아이러니했다. 짓눌릴듯한 숨 막히는 엄숙함과 환상 속에서 볼 정도의 극단적인 가벼움 양 극단을 오간다. 현실적이고 시민적인 인물이란 건 처음 나온 몇뿐이다. 그리고 환상의 내용도 너무 엄숙하다. 모차르트니 괴테니 하는 숭배의 대상이 튀어나와서 얘기해야만 하리에게 설득력이 있는 걸까. 하리 할러가 자신의 수기에서 엄숙한 향기를 풍기는 이유가 뭘까. 하리가 아직 엄숙함에서 벗어나지 못 한 걸까, 아니면 헤르만 헤세가 떨치지 못 한 걸까? 하리의 글이라는 설정이니 하리의 생각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추가적으로... 헤세 말고도 유머를 좋아하는 예술가가 참 많다. 다들 너무 진지하게 사셔서 그런가? 또 헤르만 헤세는 남자끼리만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건... 특정 취향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때쯤에 하신건가? 덕분에 헤르미네라는 인물이 나왔으면 잘 된 일이다.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나에게 행복과 환희와 체험과 무아경과 승화를 주는 것들을, 세상 사람들은 기껏해야 문학에서나 찾고 이해하고 좋아할 뿐, 삶에서 그것들을 대하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세상이 옳다면, 다시 말해 카페의 음악이나 대중의 향락이나 값싼 만족에 길들여진 이런 미국식 인간들이 옳다면, 내가 틀렸고, 내가 미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말 그대로 황야의 이리인 것이다. 나야말로 고향도, 공기도, 양식도 찾지 못하는 짐승, 낯설고 알 수 없는 세상에 길을 잘못 들어선 짐승인 것이다. - P45

과거의 유럽, 과거의 참다운 음악, 과거의 참된 문학을 잘 알고 존중하는 우리들은, 내일이면 잊혀지고 조롱당할, 어리석고 머리가 복잡한 소수와 노이로제 환자에 불과한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던 것, 우리가 정신, 영혼, 아름다움, 성스러움이라고 불렀던 것은 이미 오래전에 사멸한 한갓 허깨비에 불과하며, 단지 바보들이나 아직도 그런 것들이 살아 있고 실재한다고 여기는 것일까? 어쩌면 그런 것들이 실재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을까? 우리 같은 바보들이 애써 얻고자 하는 건 어쩌면 항상 하나의 환영에 불과한 건 아닐까? - P56

그는 성자 쪽으로도 탕아 쪽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강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나, 어딘가 허약한 구석이 있어서 혹은 게으르기 때문에 자유롭고 거친 세계로 도약할 수 없고 시민 사회라는 무겁고, 버거우면서도 포근한 별에 사로잡혀 있다. - P77

내가 당신 마음에 들고 당신에게 중요해진 건, 내가 당신에겐 일종의 거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내 내면에는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에게 답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요. 본래 모든 사람들은 서로서로 상대를 위한 거울이어서, 서로 답을 주고받고 서로 조응하는 거지요. 그러나 당신 같은 기인들은 괴팍하고 쉽게 마술에 걸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읽어낼 수도 없고, 세상에 어느 것 하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지요. 그런 기인이 느닷없이 그를 정말로 응시하는 얼굴을, 그에게 어떤 대답을 줄 것 같고 어떤 친속성을 풍기는 그런 얼굴을 발견했을 때, 기쁨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 P153

당신의 투쟁이 아무런 성과가 없으리란 걸 당신이 알고 있다고 해도, 당신의 삶은 천박하고 무미건조해지지 않아요. 하리, 당신이 어떤 훌륭한 이상을 위해 싸우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훨씬 더 천박해요. 도대체 이상이란 것은 이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건가요? 도대체 우리는 죽음을 없애기 위해 사는 건가요? 아니에요.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런 다음 다시 죽음을 사랑하기 위해 사는 거에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보잘것없는 인생도 어느 순간 그렇게 아름답게 불타오르는 거예요. - P168

실례지만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당신은 검사십니다. 어떻게 인간이 검사가 될 수 있는지 나는 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을 고발하고 처벌하는 일을 밥벌이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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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7
헤르만 헤세 지음, 김누리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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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데미안, 헤르만 하일너, 골드문트보다 헤르미네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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