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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줄거리 난장이가 공구부대를 끌며 잡일거리를 찾아 배회하고 있는데 동네 여인들의 조롱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신애는 난장이를 불러 자기 집 수도를 고친다. 그 때 동네 수도업자들이 나타나 자신들의 영업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난장이를 무지막지하게 구타하자 그들의 폭력에 분노한 신애는 칼을 들고 나와 그들 중 한 명을 찌른다.
난장이의 동네에 철거 명령이 떨어지고, 아파트에 입주할 능력이 없는 난장이 일가는 결국 입주권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난장이가 평생을 걸려 만든 집은 강제 철거당한다. 삶의 희망을 잃고 죽음을 결심한 난장이는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돈을 벌어 주기 위해 꼽추와 함께 약장수를 따라다니겠다고 장남 영수한테 심경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장남 영수의 만류로, 그 뜻마저 꺾이고 결국은 희망도 사랑도 없는 이 땅을 떠나 이상의 세계인 달나라로 간다. 은강그룹의 기계공장에 취직한 영수는 노조지부장에게 야근수당을 받게 해줄 것과 부당 해고에 대항해 싸워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노조지부장이 회사와 한통속이라는 것을 안 영수는 방직 공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새 노조를 만들어 사용자와 협상을 벌이지만 협상은 결렬되고 회사는 비밀스런 폭력으로 노동자들을 제압하려 한다. 그들은 폭력에 끝까지 맞서지만 결국 투쟁은 패배로 끝나고 노조는 해체된다.
절망한 영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은강그룹이 총수를 죽여 노동자들을 비참한 생활로부터 구출해 내는 것뿐이라는 생각으로 사람을 죽일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의 칼에 찔려 죽은 건 그가 노린 은강그룹의 총수가 아니라 동생이었다. 살인죄로 법정에 선 영수는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으로 끌려 나간다.
2. 느낀 점 :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발전된 사회가 정당하고 도덕적인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힘없는 사람들의 불행한 삶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은 나의 지금까지의 철없는 생활태도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풍족한 지금, 왜 나는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고 투정만 해댔는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으며 경제발전이라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서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하던 우리 노동자들의 존재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수도를 고치는 난장이와 대화를 나누며 난장이로부터 깊은 동질감을 느끼는 신애, 철거 명령 앞에 무력하게 쫓겨나야 했던 난장이 일가, 최후의 시도마저 어긋나버린 영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희망도 없이 그저 사용자들의 무력 앞에 당하기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클라인 씨의 병을 보고 '이 세계에서는 갇혔다는 그 자체가 착각예요'라는 영수의 말과 이 책의 재일처음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수학교사의 이야기는 갇힘이 헤어 날 수 없는 절대적 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뉴스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노동력 착취에 관한 소식을 들으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속의 사회는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70,80년대의 고통을 겪고 나서도 노동자를 위한 정당한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나 의문스럽고 화가 난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힘없는 사람들(어쩌면 우리들 자신일지도 모를)의 삶이 너무 절망적이고 불행해지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그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 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전깃불도 잘라 버리고, 수도선도 끊어 버린다.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으로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까지 머물게 한다. 아버지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3.의견각각의 이야기들이 모두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사건의 배열이 규칙적이지 않아서 그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지만 작가가 전하려 한 주제만은 너무도 강렬하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