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잡학사전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시리즈
패트릭 푸트 지음, 최수미 옮김 / CRETA(크레타)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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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토리코나님의 채널을 구독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다섯 달이 되어간다. 토리코나님은 독서와 책에 관한 영상을 주로 올리시는 유튜버인데, 북튜버로서 그 분이 가진 최대 장점은 그 분이 갖고계신 번역가라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잡학사전>의 옮긴이 최수미 번역가가 바로 북튜버 토리코나 씨다. 그 분의 인스타를 구독하고 있던 중, 직접 번역하신 새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책이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어원 주제의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바로 이 책을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좋은 기회에 서평 이벤트에 지원해 책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고, 지난 2주간 침대 옆 협탁에 올려놓고 틈날 때마다 읽어왔다. 비문학 도서의 좋은 점 중 하나다. 한 번에 쭉 읽을 필요 없이 봉지째 책상 위에 놓인 젤리처럼 생각날 때마다 몇 쪽씩 읽어나갈 수 있다는 것.

서평을 시작하기 전에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나는 영어를 어느정도 구사할 수 있고, 서양 문화에 대한 얕은 지식을 갖고 있으며,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해서는 해박하다.


끝까지 읽지 않아서 블로그에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에 읽은 또 다른 핫한 어원 관련 도서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와 비교하는 식으로 서평을 작성해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잡학사전>의 손을 들어주고싶다.


1. 내용의 정돈성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의 경우 목차를 펴면, 별다른 구분 없이 제목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한 챕터의 처음에 등장한 단어의 어원에 대해 집착적인 설명을 계속하다보면 어느샌가 마지막 단어로 흘러가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단어가 다음 챕터의 첫 단어가 된다. 한마디로 챕터와 챕터 간의 끝말잇기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 책의 작가가 워낙에 집착적으로 어원 하나에 대한 설명들을 늘어놓다 보니, 전혀 연관없어 보이는 단어들이 한 챕터의 처음과 끝에 각각 자리하고, 결과적으로 앞 챕터와 뒤 챕터 사이에는 전반적인 내용의 공통성이 없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잡학사전>의 경우 큰 11개의 챕터 안에 10개 내외의 단어들을 소개하는데, 각 챕터 안에 속한 단어들은 큰 제목 안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1-국가 안에는 여러 국가의 이름들에 대한 설명이, 4-역사적 칭호 안에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에 붙은 수식어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하나의 단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다른 단어들을 많이 소개하지 않는다.

2. 포괄하는 단어 풀의 크기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은 하나의 어원을 공유하는 수많은 단어들을 한 번에 소개한다. 그래서 동사나 형용사도 많이 등장한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잡학사전>은 여러 고유 명사들의 이름을 어원 단위로 풀어보는 느낌이라 소개되는 모든 단어들이 고유명사다.

3. 저자의 직업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의 작가는 블로거다. 블로그는 글로써 대중을 만나는 매체이므로 설명이 어렵거나 압축적이어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되짚어 볼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잡학사전>의 작가는 유튜버다. 유튜버는 그림과 음성으로써 사람들을 이해시켜야하므로 설명이 쉽고 자세하다.

4. 저자의 유머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의 작가는 매우 웃기다. 그 책의 서문은 내가 읽은 그 어떤 책의 서문보다도 웃겼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잡학사전>의 작가는 안타깝게도 그다지 웃긴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섬세해서 어원에 관한 배경 지식들을 꼼꼼히 설명해준다.

5. 문체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는 ~~합니다. 체를 쓴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잡학사전>은 ~~다. 체를 쓴다.


애초에 단어를 어원 단위로 쪼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은 각 어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는 한 어원에 대해서 배우고 나면, 같은 어원을 공유하는 다른 단어를 볼 때 높은 확률로 그 어원을 떠올리고 왜 그런 단어가 형성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어원'이라는 것을 배우면 얼마나 여러 가지 단어를 한 번에 익힐 수 있는지" 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도 추천한다. 한 가지 어원을 공유하는 단어들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다른 분야들에 퍼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어원' 이라는 것에 흥미를 갖고 싶고, 공부라기보다는 그냥 영단어를 보는 관점의 변화를 찾고 싶은 사람은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을 읽고, 유명한 고유명사들이 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지식을 쌓고 싶은 사람은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잡학사전>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솔직히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은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읽는 중에도 상당히 피로했고, 책을 다 읽은 뒤에 크게 기억에 남는 내용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지식을 쌓는 것보다는 어원 감각을 익히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잡학사전>을 읽으면서는 영단어를 배우며 역사, 인문, 과학 교양을 쌓는 기분이 들었다. 책 안에 담긴 내용은 더 적지만 머리 속에 남은 내용은 이 쪽이 더 많다.


결론적으로, 두 책은 주제만 같지 상당히 다른 책이다.

영단어의 형성에 관한 감각을 익히고싶다면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을,

영단어의 유래를 살피며 인문사회 교양을 쌓고 싶다면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잡학사전>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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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파랑
정이담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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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한 여객선 침몰 사고로부터 시작된다. 그 사고로 언니를 잃은 해수, 그리고 해수의 언니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잠수부의 딸 은하. 은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처음으로 만난 두 사람은 운명처럼 대학교 룸메이트로서 재회한다. 


대학생 시절에는 아픈 과거를 공유하는 룸메이트로서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안았던 두 사람. 둘은 같은 악으로부터 공격당했지만 서로가 있어 살 수 있었다. 서로의 품 안에서 부서졌던 만큼 사랑이 탄생했다. 그리고 어느 결정적인 하룻밤의 사건으로 둘은 말없이 서로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상대방은 모르게. 


둘은 정치와 부조리 없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지만, 우리가 너무 인간이기에 일어나버리는 사고들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은하는 지구 밖 새로운 행성에 낙원 우주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지구를 떠나고, 해수는 고래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 속세로부터 떨어져 고래들과 바다에서 살아간다. 


같은 방에서 숨쉬던 두 사람이지만 하나는 행성이 되고, 하나는 고래가 된다. 나는 생각한다. 하나는 처음부터 행성이었고 하나는 처음부터 고래였다고. 푸른 피를 가지게 되고 지느러미를 가지게 된 것은 그저 아이가 어른이 되듯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훤히 보이는 멸망의 순간에 기꺼이 품 속으로 뛰어들어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 온 생을 다해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 그것이 해수에게는 은하였고, 은하에게는 해수였다. 


참사, 고독, 이별, 상처, 첫만남, 재회, 치유, 싸움, 애증, 자발적 구속, 부조리, 악의 평범성, 발견, 희열, 후회, 초조함, 무너지는 마음, 홀가분함, 풍유, 도전, 낙원, 멸망의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그려냈다. 두 주인공이 느끼는 모든 감각이 내 피부와 혀에 그대로 전해졌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작가의 전 작품인<괴물장미>가 읽고싶어졌다. 


종종 떠오르는 책으로는 신카이 마코토의 <별의 목소리>가 있었다. 광활한 우주에 멀리 떨어진 점으로서 존재하는 두 인간이 오랜 공백을 감수하고서라도 서로만을 향한 메시지를 띄엄띄엄 주고받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해수는 입을 뻐끔대는 은하를 끌어안아 바닷물을 묻혔다. 귓불 아래 목덜미 사이 까끌거리는 모래알이 굴렀다. 맥박은 민감하게 울렸다. 해수의 포옹에선 알싸한 파래 향이 감돌았다. 소금기 밴 머리카락이 은하의 뺨을 긁었다. 손가락을 넣자 촉촉한 두피가 닿았다. 해수가 얼굴을 가까이할수록 눈동자는 진하고 배경은 옅었다. 그는 은하에게 바다를 옮겼다. 쇄골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 흉부에 스미는 바다 풀 냄새, 맥동이 어지럽게 공진했다. 피가 솟았다 내리며 정신이 산란했다. 은하는 해수가 데려운 바다 속으로 침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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