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그해 여름 끝자락
허준성 지음 / 마음지기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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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고 싶을 때, 가방을 싸는 대신 여행 책을 집어 드는 게으른 실행력의 인간이다. 여행을 동경하지만 현실과 타협하는 일이 많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떠나는 일에 더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통제되지 않는 변수가 내 두 발을 꽁꽁 묶었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 곳곳으로 가족과 함께 떠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용기와 부지런함이 부러워 오늘도 난 그들의 뒤를 쫓는다. <홋카이도 그해 여름 끝자락>의 저자도 가족과 함께 떠나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한 술 더 떠 여행 같은 일상을 즐기기 위해 홋카이도 한 달 살기에 도전했다.

이 책은 여행가이드라기 보다는 한 가족의 멋진 여정쯤이 더 어울린다. 홋카이도를 소개하긴 했지만, 니세코를 중심으로 한 홋카이도 남부에 대한 정보가 전부이다 보니, 여행 관련 정보를 기대 했다면 다소 실망 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 어디를 봤다가 아니라, 누구와 무엇을 했는가 이다. 이를 테면 한 밤중 웰컴센터에서 벌어진 사건 이라든지, 샤코탄 블루를 보기 위해 유모차도 못 가는 좁은 길을 아이들과 걷던 기억, 아빠에서 딸로 이어지는 병 우유에 대한 단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맞닥뜨린 밤하늘의 은하수 같은 것들, 기억이 곧 추억이 되는 그런 사건들 이야 말로 여행을 가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일상에서는 새로운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니 말이다.

 

 

만약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한 달 살기 한번 해볼까? 하는 자신감이 생길 수도 있다. 챕터 중간중간의 여행 팁은 물론 마지막 부분에 한 달 살기 Q&A를 빼곡히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원의 홋카이도가 아닌 한 여름의 홋카이도는 아이들과 여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 곳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할 때의 팁이나 아이들을 배려한 동선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의 큰 딸이 그린 그림들이었다. 책 말미에 무심하게 실린 그 그림들이 나를 자꾸 떠나라고 등 떠밀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아이들과 여행을 가면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 안달복달하는 부모들과 달리 아이들은 그저 몸을 배배 꼬면서 아이스크림이나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많다. 도대체 보고 느끼는게 있기는 한 것인지 본전 생각이 가득하다. 하지만 여행으로 부터 멀리 지나온 어느 날, 불쑥 엄마, 이건 그때 봤던 바다야라며 스케치북 한 가득 칠해 놓은 그림을 보고 있자면 눈으로, 몸으로 경험하는 많은 것들이 이 아이의 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저자도 틀림없이 그랬으리라. 가족과 아이들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의 신념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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