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일기
안네 프랑크 지음, 데이비드 폴론스키 그림, 박미경 옮김, 아리 폴먼 각색 / 흐름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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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안네의 일기>를 읽고, 그 다음날부터 내 일기장에도 이름을 붙여줬다. 당시의 나는 딱히 슬펐던 것 같지는 않다. 머릿속엔 일기장에 이름을 붙인 아이로 담임 선생님께 칭찬받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이제와 다시 마주한 <안네의 일기>를 보고 며칠동안 먹먹함이 가시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그때 내가 책을 읽기는 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안네의 일기>가 각양각색의 판본으로 출판되었고 판본마다 일기의 범위와 내용이 달랐다는 사실을 알고 보니 어릴 때 읽었던 책과 오늘날의 책은 많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읽은 흐름출판의 그래픽 노블 <안네의 일기>는 안네의 일기 무삭제 완전판을‘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로 각색한 책이다. 안네 프랑크 재단이 공인한 유일한 책인 만큼, 그림이나 연출로 각색하기는 했지만 원작에 가장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이 되겠다. 안네의 이야기를 왜곡없이 전하고자 하는 어떤 사명감과 책임감은‘각색자의 말’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 있다. 



<안네의 일기>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세계 2차 대전을 배경으로 유대인 안네 가족이 독일 나치군을 피해 숨어서 생활한 1942년에서 1944년까지의 기록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는 잘 몰랐던 전쟁과 인종차별의 공포속에서 살고 있는 한 소녀를 만났다. 이 소녀는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을 유일한 친구로 삼았다. 그리고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그렇듯,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치고, 성과 이성에 호기심이 많았으며(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공상을 즐겨했다. 도처에 도사리는 위협과 공포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 여성으로서의 독립적인 삶을 꿈꾸었고, 언젠가 다가올 자유로운 일상을 희망했다. 특히 이 책에는 지극히 평범한 사춘기 소녀가 전쟁이라는, 은신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얼마나 격렬한 감정의 변화를 감내해야 했는지가 잘 표현되어 있다.







예쁘고 똑똑한 안네. 전쟁이 아니었다면, 나치들이 없었다면, 유복하게 자라 본인이 꿈꾸던 멋진 여성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 일기가 감명 깊은 이유는, 혹독한 은신 생활을 하면서도 이 궁핍과 갖은 고초를 바탕으로 반드시 남다른 인간이 되어 보이겠다는 안네의 다짐 때문이다. 이유없이 핍박받으면서도 인간은 선하다고 믿는 믿음 때문이다. 밖에는 시시각각 전쟁의 포성이 다가오고, 거리에는 날마다 죽음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 와중에 먹을 것마저 떨어져 간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미래를 낙관하고, 다시 희망을 품고, 꿈을 꾸는 이 소녀의 정신력은 대체 얼마나 강인한 것인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1945년 봄이 오기 직전, 안네는 사망했고, 그 해 봄 독일군은 항복했다. 여러 번 책장을 넘기던 딸 아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랑 싸우는 건 다 똑같다고 생각했을까? 사춘기 소녀의 은밀한 대화가 궁금했을까? 전쟁의 공포를 조금이라도 느꼈을까? 다른건 몰라도 부디 내가 안네에게서 보았던 희망을, 삶의 긍정을 내 아이도 보았으면 좋겠다.



이 시대에 겪는 어려움은 바로 그런 거야.

우리 내면에 움튼 이상과 꿈, 소중하게 키워온 희망이 암울한 현실에 직면하면 여지없이 부서지고 만다니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꿈과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야.

너무 터무니없어서 실현될 것 같지 않은데도 나는 계속 붙잡고 있어.

왜냐고? 온갖 난관에도 결국엔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야.

누가 뭐래도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믿기 때문이야.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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