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손글씨에 아름다운 시를 더하다
큰그림 편집부 지음 / 도서출판 큰그림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악필이다. 어린 시절에는 곧잘 예쁜 글씨로 칭찬도 받았던 것 같은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내가 쓴 글도 못 알아보는 악필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 가는 요즘 시대에도 악필이 부끄러운 순간은 종종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큰 일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져가는 서류를 손으로 써서 내야 할 때이다. 그래서 학기 초에 가정환경 조사서 같은 종이들이 오면, 슬그머니 남편에게로 일을 넘긴다. 

<예쁜 손글씨에 아름다운 시를 더하다>라는 책을 보고 반가웠던 것은 사실 글씨를 연습할 수 있다는 부분 보다 아름다운 시를 만난다는 이유가 더 컸다. 책을 받고 보니 표지부터 너무도 아름답다. 심지어 듣기만 해도 첫사랑처럼 설레는 윤동주, 정지용 같은 시인들이 이름이 정갈하게 나열되어 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좋다.





부끄러운 글씨로 이 아름다운 시들을 필사하려니 죄송스런 마음까지 들었는데 이 책은 다행히 4가지 서체를 따라 쓸 수 있도록 구성 되어 있다. ‘정자체’, ‘심경하체’, ‘늦봄체’, ‘이서윤체’ 이 4가지를 경험해보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서체를 골라보라는 편집의도를 읽어 넘기며, 난 그냥 이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를 고르기로 한다. 아무래도 나의 목적은 손글씨 연습이 아니라 시 음미하기가 된 모양이다. 도구는 책상 주변에 굴러다니는 어떤 펜이라도 좋다고 한다. 젤펜이나 볼펜은 0.5mm나 0.7mm 추천한다 고 써 있는데 마침 내 손엔 며칠 전 구입한 0.5mm 볼펜이 쥐어져 있다. 

윤동주와 정지용 시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이라는 시를 골라 본다. 교과서에 실려 있을 때는 다 똑같아 보이던 시들이 나이가 들어 읽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시를 한 자 한 자 옮겨 적는 순간마다 이 맑고 서정적인 시구들이 천천히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무언가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다. 쓰다 보니 내 글씨가 자꾸 사선으로 눕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쓰기 선이 없었더라면 아마 반쯤은 누운 글씨들이 되었을 텐데 다행히 보기에 나쁘지 않을 정도로는 써진 것 같아 뿌듯하다. 요즘 자의 반 타의 반 새벽에 깨어 있는 일이 많은데 이 고요한 새벽에 꽤 잘 어울리는 일이 생겨 정말 기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