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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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릴수록 대부분 그렇겠지만, 우리집도 절기가 바뀔 때 마다 콧물을 달고 사는 아이들 덕분에 일주일에 누군가 한번은 병원에 간다. 처음에는 그냥 감기인가 보다 하고 두고 보던 시간도 있었지만 금새 중이염, 충농증으로 발전하는 경우를 몇 번 겪고 나서는 맑은 콧물만 보여도 무조건 병원으로 직행한다. 비염이 심한 첫째 아이는 거의 90% 충농증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항생제 처방이 잦은데 항생제는 진찰 횟수를 더할수록 더 쎄고 더 많은 양을 먹어야 했다. 설사라는 부작용이 명확했지만 유산균을 동시 복용하면서까지 항생제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밤새 코가 막혀 잠을 설치게 될 것이고, 컨디션은 엉망인채로 누런 코를 닦아 내느라 코 밑이 헐 것이다.

 



일부 항생제는 기생충과 진균도 죽일 수 있지만 바리어스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

그래서 의사들은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잘 처방하지 않는다. 감기 증상은 대체로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기 때문이다.

p.34

 



지금까지 항생제에 대해 별 문제 의식없이 살아온 나에게 <슈퍼버그>라는 책은 아주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갑자기 바이러스, 박테리아, 진균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의 세계가 불쑥 평온한 일상 안으로 쳐들어온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전쟁통 같은 요즘이다 보니 체감되는 공포는 배가 되었다. ‘바이러스 변이’, ‘숙주’, ‘전염병’, ‘치료제 개발' 같은 단어들이 일상용어처럼 사용되는 현실이 그제서야 뒤늦게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외면하고 싶은, 믿고 싶지 않은 뉴스들이 오늘도 윙윙 거실을 채운다.

 



<슈퍼버그>는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박테리아, ,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변이된 박테리아를 말한다. 뉴욕의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의 의사 맷 매카시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이러한 슈퍼버그를 막아낼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그는 그 지난한 과정을 한 인간 의사로서의 시점으로 솔직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전하는 책을 썼는데 그 책이 바로 <슈퍼버그>.

 


누가 박테리아에 감염될지, 누가 병에 굴복할지 예측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었다. 박테리아는 대상을 가리지 않으므로 우리는 모두 위험에 처해 있었다. 박테리아는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연령대의 사람을 공격했다. 박테리아가 우리보다 한 수 앞서가는 탓에 어떻게 보면 한 세기 동안의 과학적 진보가 완전히 지워지고 항생제를 발견하기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p.94

 



이 책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전반부는 매카시가 동료 의사 월시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게 된 배경과 연구 승인을 받기 위한 과정이 실려 있다.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으로 항생제의 분자 구조를 학습한 박테리아들이 계속해서 변이를 일으키며 기어이 항생제를 뛰어넘는 슈퍼버그들이 발생하고 환자들은 사소한 감염으로 죽어간다. 매카시는 의사로서의 무력함과 함께 위기의식을 느끼고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그러던 와중에 달바라는 신약을 발견하고는 임상실험에 뛰어들게 된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우연하게 페니실린을 발견하게 된 이야기부터, 비윤리적인 생체실험의 시대를 지나, 지극히 경제논리로 이루어지는 현대의 신약 개발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의학용어가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어려운 줄 모르고 술술 읽어내려갔다.

 



내가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임상실험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되는 후반부다. 가지각색의 사연을 가지고 병원에 온 환자들이 새로운 신약의 임상 실험에 참여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장면들이다. 권하는 의사도,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막다른 길에 다다른 환자도 변이된 박테리아 앞에서 희망을 품기 어려웠다. 매카시가 지금의 항생제를 완성시킨다 해도 아마 또 다른 슈퍼버그가 나타나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인류의 역사는 계속 될 것이다. 인간들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어딘가에서 리신’, ‘크리스퍼같이 진화하는 감염병에 대항하려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생물은 우리 주위에서 생물학전을 벌이고 있었고, 우리 발밑에서도 훗날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해줄 새로운 화학물질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환자들에게 닥친 치명적인 감염에 대해 생각하는데 익숙했지만, 이제 그 치료법도 그릴 수 있었다. 겉흙 바로 아래에는 질병을 완화해주고 감염병의 유행을 막아줄 미세한 분자들이 있었다. 다만 계속 찾아야 했다.  

p.343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그동안 항생제에 둔감했던 인식을 확 바꿔야 했다. 병원에서 쓰는 항생제 뿐만 아니라 육류, 가금류 가공에 사용되는 모든 항생제를 포함해야 한다. 항생제 내성이라는 것이 인류에게 이토록 위험한 줄 몰랐던 무지가 공포로 되돌아 온다. 슈퍼버그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변종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쓴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바로 우리 앞의 현실이라는 점이 너무 두렵다. 우리는 지금 이 참혹한 현실에서 회복할 날만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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