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의 다른 이름은 사이다. 가슴 속까지 뻥 뚫리는 청량함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토록 거침없고 철두철미한 주인공은 처음이다. “한자와 나오키설사 상당히 비현실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직시하더라도 그의 행보에서 느껴지는 통쾌함 만은 감출 길이 없다. 이 소설은 그래도 가끔은 승리하는 정의에 대한 이야기다. 불의의 대척점에 있던 주인공이 철저하게 주인공의 방법으로 복수하는 이야기다. 절대 이 절대 을 무릎 꿇리는 이야기다. 일개 과장이라는 작은 돌멩이가 금융조직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산을 무너트리는 이야기다.

 


1980년대 일본은 돈이 폭주하는 시대였다. 금리 인하와 대폭적인 대출 규제 해제를 등에 업고 부동산과 주식이 폭등했다. 그야말로 거품이었다. 90년대에 들면서 거품은 급격히 꺼졌고 은행과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했다. 그 한복판에 은행원 한자와 나오키가 있었다. 도쿄중앙은행 오사카 서부지점 융자과장인 그는 서부오사카철강에 자금을 빌려주었지만 그 회사는 6개월 후, 5억엔의 대출금을 남기고 도산한다. 무리하게 대출을 통과시키라고 명령했던 지점장 아사노는 이 모든 책임을 한자와 과장에게 뒤집어 씌운다. 하지만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을 주인공이 아니다. 끈질긴 추리와 추적, 거침없는 행동력, 두둑한 배짱을 앞세워 한자와는 끝내 손실액 5억엔의 회수에 성공하고야 만다.

 


p.218

날씨가 좋으면 우산을 내밀고 비가 쏟아지면 우산을 빼앗는다.-이것이 은행의 본모습이다.

대출의 핵심은 회수에 있다. –이것도 역시 은행의 본모습이다.

돈은 부유한 자에게 빌려주고 가난한 자에게는 빌려주지 않는게 철칙이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소설 속의 배경이 되는 은행은 폐쇄적인 일본의 관료주의와 수직적인 조직관계, 이 모든 것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오랜시간 경제 불황에 허덕여 온 일본의 숨막히는 현실이 눈에 보이듯 그려진다. 마지막장으로 갈수록 과거, 기름칠을 하고 나사를 조이며 오로지 기술력으로 돈을 벌던 시대에 대한 향수가 어렴풋이 풍겨온다. 한자와 나오키가 실행하는 복수는 통쾌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환상 속의 이야기임을 자각하는 순간, 당한만큼 갚아준다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 하는 역설을 느낀다. 당한만큼은 커녕 그 10분의1도 되돌려주지 못하는 현실이 아득해서 그 시대를 지탱하던 아버지들의 무릎이 푹푹 꺾이였을 것이다. 그 후로 몇 년 뒤 우리나라에선 IMF가 터졌다. 실업자의 명패를 달고 길거리, 오락실로 한 가정의 아버지들이 숨어들었다. 과연 우리라고 얼마나 달랐을까?

 

이 소설은 일본에서 2004년 초판, 2008년 후속편이 나온 이후로,  2013년 드라마화 되면서 시청률 50.2%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판권 문제로 바로 출판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뒷면을 보니 2012년에 출판신고 후 7년만에야 우리 앞에 나타난 작품이다. 나는 드라마를 먼저 봤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일단 드라마와 소설의 차이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드라마의 극적인 구성을 위해 다소 과하게 각색된 부분들이 알아서 걸러지니 소설만의 매력이 확실히 드러난다. 앞으로 나올 4권까지의 여정이 무척 기다려지는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