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방 안 기온이 벌써 27도를 넘어서고 있다. 아이들은 마스크를 쓴 채 가쁜 호흡을 하며 집을 나섰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에서 매우 나쁨수준으로 치닫는다. 아마도 하루종일 저 창문이 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문단속을 해도 가족들은 알레르기 질환에 사계절 시달린다. 소리도 없이 우리 주위를 맴도는 독성물질. ‘이라면 마녀가 휘휘 저어 만드는 마법의 물약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은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다. 주위에 존재하는 을 넘어 인간 자체가 이라고 독의 꽃이라고 읖조리는 한 작가의 이상한 이야기를 만났다. 이 기묘한 이야기는 마치 독극물처럼 천천히 스며들었다가 순식간에 독자들의 얼을 빠트린다.

 


이야기는 독성물질에 감염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된 한 남자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옆 침대에 누워 알수 없는 말들을 웅얼거리는 그의 이름은 조몽구.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나 태생적으로 몸에 새겨진 독을 어쩌지 못해 두통에 시달리는 그는 유년시절, 성장기, 군대, 대학시절을 거치며 점점 내,외부의 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런 그의 곁에는 스스로 그 자체가 되어가는 삼촌 조수호가 있고, 삼촌과 조몽구를 사이에 두고 독으로 얽힌 인물들은 하나, 둘 무력하게 굴복하게 되는데 

 

 

 p.177

모든 물질은 독이며 독이 아닌 물질은 없다. 다만 올바른 용량만이 독과 약을 구별한다.” 요컨대 독과 약은 서로 대립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과학적으로는 차이가 없고, 다만 얼마나, 어디에서, 무엇과 함께 사용되느냐에 따라 독이 되거나 약이 된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겹도록 에 천착하는 작가나 인물들에 크게 공감할 수 없었다. 우리 주위를 둘러싼 독성물질은 현실이었지만 그 자체는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 뉴스에서 재현되는 장면은 소름끼치는 사실이기도 하다. 어제도, 그 며칠 전에도 사람들은 에 중독된 듯 가족을 죽이고, 전혀 모르는 타인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약에 취한 여자를 강간했다. 저자가 말하는 이 아니면 딱히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끝 간데 없는 광기였다. 마음의 이였다. 해결책은 을 더하는 일이다. 독과 약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니 내 안의 독과 외부의 독을 적절한 비율로 중화 시키는 일, 그것만이 인간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독을 가진 우리는 모두 독의 꽃이니

 


 p.211

우리에게 독은 그저 독이라 불리는 어떤 물질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지요. 우리에게는 이기심, 분노, 공포, 탐욕 따위를 독과 심리적으로 연결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독은 우리 자신의 일부이지요. 우리는 우리 속의 나쁜 기운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면서도 거기에 이끌립니다. 이 말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까요?”

 

 

이 소설은 장르를 특정할 수가 없다. 조몽구라는 인간을 둘러싼 한 편의 서사소설 같기도 하고, 막판으로 치닫을수록 풀리는 인물의 관계와 여러가지 형태의 죽음을 쫓는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이라는 존재를 혼몽하게 풀어낸 환상소설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무거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500페이지 남짓의 장편이 술술 읽혀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더해진 로맨스까지 작가는 을 모티브로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다 쏟아낸 모양이다. 그래도 이야기가 물 흐르듯 잘 흘러가는 걸 보면 저자는 타고난 이야기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