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드뷔시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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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은 내가 듣는 거의 유일한 클래식 음악이다. 서정적인 음률이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이 듣기에도 그저 막연히 아름답다. 특히 조성진이라는 피아니스트가 세상에 알려진 후, 쇼팽의 폴로네즈는 가장 많이 듣는 클래식 음악이 되었다.(그래봐야 몇 번 안되긴 하지만…) <안녕, 드뷔시>를 펼치니 초입부터 쇼팽의 폴로네즈가 나온다. 조성진 같은 피아니스트 미사키 요스케도 나온다. 미스터리나 추리물을 잘 보지 않는 내게 이 소설이 전혀 거부감 없이 술술 읽혀나간 이유이기도 하다. 아니, 사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이 소설의 몰입감은 엄청나서 책을 읽다가 아이의 픽업 시간에 늦어 허둥지둥 집을 나서야 할 정도였다.

 

하루카와 재해로 부모를 잃은 사촌 루시아는 함께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사이좋은 오누이 같던 둘이 할아버지 댁 별채에서 자던 어느 날, 화재가 일어나 루시아와 할아버지는 죽고 하루카는 겨우 살아남지만 심각한 화상으로 피부이식수술에 고통스러운 재활치료가 불가피하다. 한편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막대한 유산을 상속하게 된 하루카는 여전히 거동이 불편한 채로 피아노를 다시 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된다. 그때 미사키 요스케라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나타나 하루카가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돕는데, 그러는 중에도 하루카의 목숨을 노리는 일련의 상황들은 벌어지고 급기야 어머니마저 살해당하기에 이른다.

 

 사건을 이끌어가는 문장의 매끄러움, 화재 상황과 화상 치료에 대한 디테일한 접근과 실제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는 듯한 실감나는 묘사, 법을 공부한 피아니스트라는 매력적인 인물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몰입감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예상을 뒤엎는 스토리의 반전으로 마지막 장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평소 미스터리 소설은 너무 하드코어 하거나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소설은 그것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p.50  “너는 비뚤어질 만한 아이가 아니다. 그러니 불행에 끌려다니지 말거라. 두 다리로 서서 앞을 보거라.

슬플 때는 울어도 된다. 분할 때는 이를 갈아도 된다. 다만, 네 불행이나 주위 환경을 실패의 핑계로 삼아서는 안된다.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해.

 p.75  “잊지 않도록 한 번 더 말해 주지. 네 몸의 3분의1은 다른 사람이 제공해 주었고 내가 열심히 수술한 몸이다. 그리고 많은 간호사들이 끼니를 거르고 잠을 반납해 가며 보살핀 몸이다.

 잘들어. 너는 살아 있는게 아니야. 살려져 있는 거다.

그걸 잊고 재활 치료를 피하거나 살아가는 것에 비관이라도 해 봐, 어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테니.”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할아버지가 루시아에게 해주는 말이나, 성형외과 의사가 하루카에게 해주는 말들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면 꼭 작가가 독자들에게 해주려는 말 같다. 일본 사회를 음울하게 감싸고 있는 폐색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염원, 재해 혹은 장애 등 훼손된 모든 것에 대한 치유와 회복을 꿈꾸는 저자의 바람이 이 소설을 단순한 추리소설로 남지 않게 한다. 현대 사회에 바치는 은유였고, 드뷔시의 달빛처럼 아름다운 빛으로 지친 영혼을 고요하고 편안하게 하는 음악 그 자체였다.     


 

p.381 건반을 짚으면서 생각했다. 이 선율이 닿는 모든 사람이 평온해졌으면. 상처받은 영혼, 거칠어진 마음을 어루만져 달래고 싶었다. 남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상처를 받은 사람도 다 같이 편안해지길 바랐다. 내가 이 곡을 좋아하는 건 틀림없이 그런 마음을 오래전부터 품어 왔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저자의 서문이 예사롭지 않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소설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미스터리 추리물을 읽으면서 회복과 치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이 스토리상의 반전보다도 나에겐 더 충격적인지도 모르겠다. 나카야마 시치리 라는 작가의 소설은 나의 첫 미스터리 소설로서 조금의 덜함도 과함도 없이 딱 적절했다. 앞으로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가 줄줄이 나올 듯 하니 챙겨서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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