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다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인생의 특별한 순간을 포착해낸 작가의 섬세한 시선 ​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띠지의 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모리 에토의 작품은 처음이었고, 저자의 이력을 봐도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다만, <다시, 만나다>라는 제목과 아기자기한 표지 일러스트가 선이 고운 일본 소설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처음 접하는 작가의 책은 전혀 예측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늘 첫 장을 넘길때 마다 두근두근하다.


이 단편집은 <다시, 만나다>, <순무와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 <마마>, <매듭>, <꼬리등>, <파란 하늘>의 총 6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우연한 장소에서 예기치 않는 일로 전혀 예상 밖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세상 참 좁다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다시, 만나다>는 그런 우연과 인연이 촘촘하게 엮인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다룬 이야기이다. (원어 제목 중 우연함을 내포한 만남을 뜻한다.) 그저 사는 동안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사와다와 나리키요, 그들은 결국 다시 만나 밥이라도 한 끼 먹게 되었을까?


P76. 빈발하는 공격을 방어하는 최선의 길은 국민 모두가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 ‘1억 총 평상심을 표방하는 수상의 지도 아래 순응을 잘하는 일본 사람들은 아주 순조롭게 일상을 연기하고 있어…(중략)….또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앞날을 알 수 없는 세상이기에 더욱이 순무는 순무여야 하고 무는 무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순무와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는 누군가는 아줌마의 진상이라고 혀를 찰 일이 실은 주부로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로부터 그녀의 자존감이 지켜졌을 때 그 통쾌함에 웃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으로부터, 자식으로부터 여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엄마의 위치가 가여워서 울었다.

 


P.81  아는지 모르겠네. 슬픔은 딱 잘라서 두가지 유형이 있거든. 한가지는 무겁게 마음에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유형. 그리고 또 한가지는 모든걸 몰아내서 마음을 텅비게 하는 유형. 무거운 슬픔은 금방 익숙해질 수도 있어. 사람이 그렇게 생겨먹었잖아. 시간을 들이며 그 무게를 견뎌 낼 수 있게. 골치 아픈건 텅 비는 쪽이야. 그 슬픔은 정말 인간을 갉아먹어.

<마마>는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무조건적인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것이 설사 거짓으로 지어낸 환상에 불과할 지라도 무민의 마마같은 따스함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깊이 공감하며 읽어내려갔다.       


<매듭>은 한 가지 사건이 다수에게 얼마나 다른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주인공 고토가 어린 시절 상처라고 생각해 왔던 기억이 상대에게는 전혀 다른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그간의 아픔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P.184   내가 원했던 것은 뜨뜻미지근한 우정 따위가 아니라 그의 열정이었다. 뭐에 홀린 것처럼 강물로 발을 내디디던, 흥분한 혼을 지닌 살아 있는 육체였다.



<꼬리등>은 세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짜여진 소설이다. 투우장에서 쓰러져 가는 소의 시점, 끝내 서로의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랑, 최고의 목표로 추구하던 것들이 것들이 거짓이라는 이름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울부짖는 연인의 이름. 그들이 각각 죽음에 다다르는 과정이 숨이 막힐 듯이 진한 여운과 오랜 잔영으로 남는다. 마치 꼬리등 불빛을 마주한 것 처럼.


띠지의 문구가 이해가 되었다. 작가가 포착한 생의 장면들은 너무나 섬세하고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어, 종종 현실과 이야기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나는 어떨 땐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가끔은 그 상대가 되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제 3자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몰입도를 높이면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마른 감성이 촉촉해지는 기분이다. 저자의 감각적이고 섬세한 묘사가 인상적인 책이다. 모리 에토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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