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공화국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오래 전, 도쿄에서 머물다 남쪽 지방으로 여행을 하기 위해 친구가 살고 있는 가마쿠라에 잠시 들렀다. 절과 신사가 많아 일년내내 관광객이 많다는 점에서 교토나 나라와 비슷했지만, 그곳들이 왠지 모르게 화려하고 번잡한 느낌이라면 가마쿠라는 고즈넉하면서도 일본의 다정한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곳에서 만난 오오후나 관음상의 온화한 미소는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반짝반짝 공화국>을 읽으면서 그때의 그 장면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지도를 보니 예전에 끝도 없는 나무계단과 산길을 올라 다다랐던 켄조지라는 절, 그 산길 입구에 츠바키 문구점이 있었다. 실제로 오래된 츠바키 문구점이 있었다 해도, 포포짱 같은 대필가가 누군가의 사연을 쓰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다. 어쩌면 포포짱이 걷던 골목길을, 산책길을 나도 한번쯤은 걸었을지 모른다. 반가운 마음에서인지 난 다소 과하게 이 소설에 몰입하고 있었다.



<반짝반짝 공화국><츠바키 문구점>의 후속편이다. 전작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처음 도입부의 결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참 읽어내려간 후에야 알게 되었다. 츠바키 문구점의 대필가 포포짱이 이웃의 미츠로씨와 그의 딸 큐피와 가족이 되는 이야기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학에서 돌아와 대필가로서 일하기 시작했던 포포짱이 가족을 이루면서 한 층 더 인간적인 성장을 이루어 내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가족이 생기면서 포포짱은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할머니(선대)를 이해하게 되고, 어렵기만 하던 미츠로씨의 전부인 미유키씨까지 끌어앉을 수 있게 되고, 대필을 하는 타인의 사연에는 더 배려 깊고 진중해졌다.  

 

 


p.73 문득 보니, 바바라 부인 집의 수국에 벌써 색이 들고 있었다. 멍하니 있을 틈이 없다. 눈을 부릅뜨고 있지 않으면, 인생의 셔터 찬스를 놓칠지도 모른다.

 


포포짱 외에 매력적인 주변인물들이 많다는 점도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다. 늘 유쾌하고 남자친구가 많은 바바라부인, 츤데레 스타일의 남작과 빵을 잘 굽는 빵티 커플, 물방울 무늬 옷의 마담 칼피스, 그리고 포포의 남편 미츠로씨와 그녀의 딸 큐피까지.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포포짱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야기가 때론 유쾌하고, 때론 따듯하다. 물론 대필하러 오는 손님들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다카히코의 손편지는 얼마나 코끝을 찡하게 하던지.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년이 엄마에게 쓰는 편지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모험이고 도전이고 노력이었다.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기쁘다는 이 소년의 고백에 난 나도 모르게 눈가를 훔치고 말았다. 엄마로서 그보다 더 한 찬사가 있을까.

 

 

 

마지막 페이지에 첨부되어 있는 가마쿠라 지도와 포포짱의 손편지들은 이 책의 리얼리티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대필이라는 것이 아름답게 옮겨적는 줄만 알았지, 정말 그 사연을 쓴 이들의 글씨체를 최대한 살려서 쓴다는 사실을 간과한 탓에 이 손편지들을 보는 순간, 타인의 마음을 대신 전하는 일이 이토록 섬세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아직 <반짝반짝 공화국>을 읽지 않은 이라면 나처럼 역주행하는 것보단 <츠바키 문구점>부터 차례대로 읽는 것이 소설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마도 레이디 바바에 대한 이야기나 남작의 비밀사연이 다음편에 이어질지도 모르니, 앞으로도 계속될 이야기들을 온전히 즐기고 싶다면 더더욱 그러하길 추천한다. 몸도 마음도 스산한 이 계절에 읽기에 아주 적당한 온기를 가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