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10
알베르 카뮈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해설 / 생각뿔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이방인은 다를 이(), 나라방()이라는 한자를 쓴다. 어디에도 거리를 나타내는 말은 없지만 이 단어는 발음 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어떻게든 세계에 속하려는 나와 자기가 속한 세계와의 타협을 거부하는 뫼르소의 사이 만큼이나 넓은 간격이 그 안에 숨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먼 거리일까? 나는 내가 속한 세계와 잘 지내고 있나? 누군가의 눈에 나는 또 하나의 이방인일 뿐인 것은 아닐까?



오래 전, 주제의 무게에 질려 아무렇게나 읽고 던져 놓았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가장 큰 계기는 손바닥만한 미니북을 갖게 되면서부터다. 고전이라는 이름의 무거움은 책의 크기와 무게만큼이나 가벼워져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펼쳤다가도 이내 읽던 페이지를 벌려 놓은채 내려놓아도 좋을 모양새다. 하지만 촘촘히 박혀 있는 글자만큼 밀도 있는 내용은 연전히 쉽사리 다 읽어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p.9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의 장례식장을 찾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시종일관 세상의 모든 일에 관조하는 듯한 뫼르소의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가 죽은 날이 어제인지 오늘인지, 엄마의 나이는 몇 인지, 누가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지 같은 사실들은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좋아하는 밀크 커피나 담배, 작렬하는 태양, 쏟아지는 잠을 자고 싶다는 욕구만을 느낄뿐이다. 여자친구인 마리가 결혼할 마음이 있는가 물었을 때에도 결혼은 할 수 있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웃인 레몽이 우린 친구냐고 물었을 때도 그는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부모, 연인, 친구, 사회로부터 오는 모든 관계들이 뫼르소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는 세상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본능과 욕구에 충실한 채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방인이다.          



p.173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진 존재다. 세상에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장차 사형을 선고 받을 것이다.그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었으면서 자기 엄마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한 아랍인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는 과정에서조차 뫼르소는 담담하다. 사람을 죽인 일에도 일말의 죄책감이 없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슬퍼하지 않는 인간은 마땅히 누군가를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다는 부조리한 판결에도 원래 세상은 그런것이였다는 듯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 조차 그렇다. 이 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뫼르소가 사형선고를 받고 끝끝내 거부하던 부속 사제와 만나는 장면이다. 뫼르소가 이 세상에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유일한 장면이기도 하다. 스스로 거부하던 사회의 윤리, 관습, 종교 등 개인의 욕구 이외의 것들을 강제,강요할 때 그는 처음으로 분노를 느꼈다.    



 책을 다 읽어도 이방인과 나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그저 세계의 바깥을 겉돌면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이방인을 내가 가진 도덕성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수의 세상이 옳다고 믿는 관습이나 통념이 때로는 얼마나 잔인하게 한 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부조리한 세계와 부도덕한 이방인 사이에서 난 어느 쪽에 서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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