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갖고 놀고 있네 - 수학을 포기할 수 없는 당신이 알아야 할 최소한의 지식
폴 록하트 지음, 김정은 옮김 / 생각의서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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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좋은 머리는 아니었지만 다른 과목들은 시간과 노력을 쏟으면 쏟는 대로 그나마 성적이 나왔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수학이다. 숫자와 낯선 기호들만 보면 눈이 어질해지는 통에 문제집을 하루 종일 끌어 안고 있어도 도통 진도가 나질 않았다. 숫자와의 어색한 만남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도 계속되었는데 영업부서의 보고서라는 것이 결국은 숫자로 점철된 종이 문서였기 때문에 여러 날을 컴퓨터 앞에서 씨름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했다. 이대로라면 죽을 때까지 수학은 내가 영영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수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내 아이에게도 같은 경험을 물려 줄 수 없기 때문이다. 1부터 10까지의 수를 깨치는데 한참이 걸리는 아이를 보며 이 아이에게 마저 수학이 아득한 것이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읽게 된 책이 <숫자 갖고 놀고 있네>. 수학이 재밌어지는 책이라니 속는 셈 치고 책장을 넘겨 본다.


수학자이자 수학교사인 저자는 서문부터 아주 매력적인 화법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산수는 숫자로 하는 뜨개질이며 그저 하나의 기술일 뿐 못해도 사는데 별 지장은 없다고 단언해주는 저자의 말에 힘입어 페이지를 넘기는 손길이 가볍다. 이러한 화법은 책을 읽는 내내 이어지는데 마치 재미있는 수학선생님과 11 수업을 하는 느낌이다. 왜 내 주변엔 이렇게 재미있는 수학 선생님이 없었을까 한탄하게 되는 부작용도 있다.



P.86  우리가 계산원이 되려고 이 책을 읽고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산수와 그에 담긴 철학을 배우는 이유는 계산능력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수의 기원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덧셈과 뺄셈, 곱셈과 나눗셈, 분수와 음수까지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배우게 되는 산수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내내 강조하는 부분은 온갖 말도 안되는 실수를 해가며 숫자와 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6X8이라는 곱셈 계산을 할 때 우리는 보통 구구단으로 외운 답을 말하지만 사실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은 무궁무진 하다. 실제로 6을 여덟번 더할 수도 있고, 8을 여섯번 더할 수도 있고, 8을 세번씩 더해 그것을 다시 2번 곱할 수도 있다. 이렇게 숫자를 가지고 논다는 것은 사고의 유연성과 창의력을 키우는 일이다. A에서 B로 가는 길이 한 개가 아니라 10개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이다. 챕터 말미에 저자가 유머러스하게 던진 수많은 가정과 질문들이 내가 얼마나 대책없이 꽉 막힌 사람이었나 실감하게 만든다.  


 P.293  숫자세기에서는 이런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가지 사례가 실은 완전히 똑같은 것으로 밝혀지는 겁니다. 물론 정답은 달랐지만 문제 본질 자체는 같았습니다. 사실 이처럼 가장 단순하고 추상적인 측면을 통해 대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여러 사물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수학자의 일입니다. 수학적 통찰은 여러 분야에서 강력한 통찰력을 발휘하지요.


책을 읽으며 숫자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고 새롭게 인지, 분별하게 된 사실도 있다. 초등학생을 둔 부모가 읽으면 현실적인 도움도 얻을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은 정보를 주는 책이기 이전에 숫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깨주는 책이다. 숫자는 그저 표현의 수단일 뿐 그것을 갖고 노는 사람에 따라 무궁무진한 세계를 보여준다는 사실 만으로도 저 거대한 수학이라는 우주에 발을 내밀어 보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재미있다. 세상에나 숫자가 재미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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