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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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움이라는 마을이 있다. 천사가 어리석은 영혼들을 자루에 넣어 날아가다가 몽땅 흘리는 바람에 바보들의 마을이 만들어졌다. 바보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인생 우화>. 이 책은 시원시원한 글자체와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화 라는 장르(?)답게 모두 우스운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실소 뒤에 긴 침묵이 이어진다. 머리 속에는 정체 모를 의문부호가 생겨난다. 그러는 바람에 손에 쥔 책장은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누가 현자이고 누가 바보인지 점점 모호해진다. 처음엔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에 코웃음을 치다가, 더러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우리 현실이구나 싶다가, 결국 그들의 지혜로움에 탄복하게 되는 이상한 경험을 하고 말았다.


바보들의 인생수업은 야망에 눈 먼 정치인의 이야기다. 헛간에 불이 나자 불을 짚으로 덮으라는 정치인, 정치인과 추종자들 때문에 불은 계속 번진다. 화재가 걷잡을 수 없어지자 아는 후배에게 다음 지도자 자리를 넘기지만 그 이의 입에서 나온 건 짚을 더 가져오라는 외침뿐이다. 그렇다. 섬뜩하게도 이는 우리가 늘 뉴스에서 접하는 바로 그 이야기들이다. 바보들이 사는 마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아니면 내가 지금 바보들이 사는 나라에 살고 있는 건가?  



178. “아들아,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참견하고 지적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가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우리보다 가진 것이 없으면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긴단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헤움의 바보들은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마을사람 모두가 시인이고 모두가 교수이다. ‘세상의 참견쟁이들’, ‘단추 한 개이런 이야기들은 읽으면 정말로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본인의 삶에 필요 없다면 아무리 어렵게 구한 단추라도 버릴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또 그들이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낸 말도 안되는 논리가 온 마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과연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나은 삶을,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이 또 한가지 반가운 점은 오랜만에 류시화 시인이 엮어낸 책이기 때문이다. 정신 세계와 관련된 많은 외국 서적을 번역해 오던 시인이 난데 없이 우화를 들려주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이 책 또한 깨달음이었다. 해학과 풍자를 빌어 사색하게 만드는 책이다. 더불어, 외국의 이국적인 이야기들이 마치 늘 듣던 옛이야기처럼 편안하게 읽히는 것은 모두 시인의 필력 덕분이리라. 오래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의 힘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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