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 - 문화인류학자가 바라본 부모와 아이 사이
하라 히로코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한울림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유치원 차량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이가 신발을 신는게 늦다. 꿈지럭거리는 아이를 보다 못해 신발 뒤꿈치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아이의 발을 구겨 넣는다. 빨리 가자고 채근하는 목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아이는 저만치 뒤쳐져 있다. 덩달아 뒤쳐지는 둘째 아이까지 어르고 달래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면 이미 하루에 쓸 에너지 중 80%가 소진되어 버린다. 이게 아닌데 싶다가도 달리 방법을 몰라 아이 대신 종종거리는 내가 가여울 지경이다.



해어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 이 책은 캐나다 북서부의 타이가 숲 속에 사는 원시 부족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인 일본의 문화인류학자는 추운 극지방의 수렵 채집 부족의 삶에서 문화가 전달되는 과정을 연구하던 중, ‘가르친다배운다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했다. 잘 보고(관찰하고), 스스로 해보고, 배우는 별도의 과정 없이 수많은 일들을 스스로 해내는 해어인디언의 아이들이 바로 그것이다. 어른들은 구태여 무언가를 가르치지 않는다. 부모가 유능한 사냥꾼이라고 해서 내 아들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아이를 나와는 다른 독립된 인격체로 보고 육아를 힘든 노동이 아닌 즐거운 놀이로 받아 들인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스스로 해보며 수렵 생활의 노하우를 스스로 체득한다. 가르침도 배움도 없다.



해어인디언 아이들뿐만 아니라 자카르타의 아슬리족, 에스키모, 뉴기니의 문두구머족, 수마트라섬의 미낭카바우족, 우간다 몽크렐 산지의 이크족 등 각국의 원시 부족들의 이야기도 폭 넓게 소개 되어 있다. 원시 부족의 교육와 육아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한 생명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아이는 인류를 유지, 존속시키는 구성원으로서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 속 같은 치열한 생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크게 보면 인류의 존폐는 오로지 이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존엄한 생명 앞에서 난 오늘도 잔소리를 퍼부어 대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해 주지 못했다.



  P. 84  장난감 활과 화살, 장난감 카누는 비록 장난감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날아가고 물에 뜹니다…….그래서 아이들은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질리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몇 번이고 똑같은 일을 되풀이합니다. 이렇게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치를, 그리고 진짜를 만드는 사치를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충분히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원시 부족의 수렵생활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그래서 현대 사회로부터 떨어져나가 앞으로 더 궁핍하고 처참함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해어인디언들의 삶이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유로운 해어인디언의 아이들처럼, 우리 아이들도 자유롭게 스스로 터득해나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충분히 관찰할 시간, 충분히 실패할 시간, 그리고 다시 도전해볼 시간, 그런 시간이 있다면 아이들은 우리가 예상한 그 무엇이라도 훌쩍 뛰어 넘는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꼭 어른들의 기다림,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 아침 나에게 아이를 기다려줄 충분한 인내심이 있었다면


​P.170  어린시절 '스스로 익히는 기쁨'을 체험한 아이들이라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짓눌리면서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자신감을 잃지 않는 십대 시절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는 '잘 보고','스스로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 시간 동안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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