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볼트 - 세계화에 저항하는 세력들
나다브 이얄 지음, 최이현 옮김 / 까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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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사피엔스>로 잘 알려진 유발 하라리의 추천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추천사라는 것은 공통적으로 추천인과 같이 글쓴이가 가진 성향, 혹은 갖고 있는 사상과 신념 등을 일부 반영한다. 먼저는 둘은 유대인출신으로 서양에서 겪어야 했던 참혹한 실상과 현실에 대한 정서들을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나다브 아얄이 책 지면 한 부분을 깊게 차지하고 있는 동물보호에 관한 내용을 유발 하라리 또한 유독 관심을 갖고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차치하고, 책의 제목은 저자의 기획의도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리볼트(Revolt)는 반란, 봉기, 저항이란 뜻이다. 부제목은 이를 뒷받침하여 설명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부제목은 바로 세계화의 저항하는 세력들이다(The Worldwide Uprising Against Globalization). 저자는 ‘세계’가 ‘세계화’를 거치면서 야기하는 ‘문제’들을 수면위로 ‘문제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자가 세계화에 논의하기 위해 적합한 문제제기를 할 수 배경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과 기자라는 직업적인 특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라는 직업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사실을 기록해야 하는 책무를 갖고 있다. 그는 책에서 상당히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를 종합해서 서술하는데, 이는 읽는이 로 하여금 세계 곳곳마다 차지하고 있는 세계화의 아픔에 대한 통렬한 경험들을 함께 체험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나다브 아얄이 논의하고 싶은 지점은 크게 다섯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첫 번째로 세계화가 가져다 준 변화에 대한 것이다. 변화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는 먼저 이렇게 말한다. 


“세계화는 자기 영속적일 뿐만 아니라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도 제공한다. 인간이 이룬 최대의 발전은 1990년 이후로 10억 명이 넘는 인구가 비참한 가난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러한 동기에는 우선적으로 계몽주의 가치관이 이뤄낸 성과인 ‘산업혁명’을 먼저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효율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요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계몽된 세계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이륙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세계화는 강압적이며, 자연스러운 현상도 아닌 세계 정치와 경제에 참여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는 세계화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그늘을 야기시키는 동기가 되었다.


두 번째로 세계화를 이루기 위한 투쟁과 그것이 가져다 준 악영향에 대해서 역사적인 기록과 자신의 경험을 경과하여 피력한다. 이를 나다브 아얄은 많은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데, 대표적으로 영국과 중국 사이에 존재했던 ‘아편 전쟁’,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아이티 혁명(유색인들이 힘이 강화되자 그들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어 차별을 하자 계급제도를 제정하였고, 그의 반발로 이뤄졌던 혁명), 파푸아뉴기이에서 발생한 부건빌 혁명(광산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이 광산 폐기물로 인해 자녀들이 중독되고, 강이 오염되는 현상에 대한 분노)등을 언급하면서 말을 이어 나간다. 나다브 아얄은 그다음에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세계화는 결국 환경적인 문제를 지속적으로 야기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환경문제는 동물 살해, 오존층 파괴로 인한 기후변화, 붉은색 육류의 소비, 물가 예측등이 인간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세계화를 통해 지도자는 힘을 잃었고, 세계화에 굴복하여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저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세 번째로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에 존재한 이념 갈등에 대한 부분이다. 나는 이 부분이 크게 와 닿는 이유는 가치 투쟁이 한국 사회에서도 만연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세계화는 각기 다른 이념이 급진주의자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배경들을 조장하고 있다고도 판단할 수 있다. 특히 무슬림을 위시하고 있는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은 테러에 대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테러를 한다는 점이 그렇다. 사상과 자본, 기부금등이 국경을 너머 자유롭게 횡당하고, 지역사회는 극단주의를 지원한다. 셰계화는 이처럼 근본주의와 같은 신념들을 세계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한다. 나다브 아얄은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는데, 왜냐하면 근본주의를 대표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기독교와 같은 종교단체에서 순수한 진리를 대변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빌미로 자기들의 공동체를 수단과 방법을 고려하지 않고 부풀리는데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근본주의에 속한 신 나치주의자 혹은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같은 공동체들과의 인터뷰의 내용을 기록하면서 세세하게 근본주의자들의 신념을 실제적인 예를 들어 비판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네 번째는 세계화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 세계 인구 감소에 대한 문제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그것은 경제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일본을 예로 들어 이러한 감소율의 이유에는 노동 시간, 어린이집, 직장 내 여성에 대한 처우, 임금 격차, 사회 안전망, 경제적 안정성, 경제 안보 의식 등이라 설명하는데, 이는 비단 일본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산업사회는 새로운 생활 방식을 성취했지만, 그 사회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은 절망감으로 삶을 산다. 이는 결과적으로 경기 침체는 출생률을 떨어뜨린다. 사회구조를 복권하기 위해 이민 정책도 고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속 에서 세계화를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세계 시민”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점차 이민자들이 늘어가는 상황에서도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지점으로 후반부에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점은 굉장히 유효한 주제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초 강대국’으로 세계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 나라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로써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이었던 ‘트럼프’의 당선이 더욱 그러했다. 트럼프는 민족주의를 정치의 도구로서 이용했다. 그는 민주당원이었다가 공화당원이 되었고, 낙태와 관련한 여성의 선택권을 지지했다가 지금은 맹렬히 비난하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옹호했다가 현재는 비판한다. 그가 전략적으로 삼았던 것은 미국의 중산층을 위주로 한 포퓰리즘에 대한 환상을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국은 신기루를 선택했고, 그러한 아메리칸 드림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나다브 아얄의 마지막 페이지에 남긴 글을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의 목표는 이전 시대에 지어진 집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을 더욱 살 만한 공간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진보는 바로 이러한 것이다. 현재 우리는 민족주의자가 아닌 세계화를 함께 고민하고 이륙해가야 하는 위치에 우리는 서있다. 실제적인 문제가 서서히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한국이 근대주의를 넘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아직은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아직 계몽되지 못한 ‘근본주의’자들로 가득하다. 종교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민자’들을 거부하고, 성서의 내용을 신봉한다는 이유로 성소수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을 차별하고 핍박한다.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도 해당한다. 정치토론을 보면 아예 대화가 안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칼 포퍼는 말한다. 


“우리는 금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 사회(The Open Society)의 길이 있을뿐이다.”


열린사회란 내, 외부와 끊임없는 이성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사회의 목표를 계속 점검하는 동시에 점진적으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는 이러한 열린사회가 환상이라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이념이 뒤섞인 세계에서 이것이 가능하겠냐고 묻는다. 다만 나는 우리가 추구해야 방향성은 토론이 되어야 된다고 믿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른 생각들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므로 의사소통을 통해서 우린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며 인정하고, 이해 할 때 세계화는 긍정적으로 진보할 수 있을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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