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협회에서 근무하는 루는 미지의 세월이 쌓여 기묘한 아름다움이 된 집을 조사하는 업무를 갑작스레 담당하게 되고, 거기다 그곳에 머무르며 집의 일부인 곰을 돌보는 일조차 맡게 될 상황에 처한다. '상황에 처했다'는 말은 그녀가 곰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느낀 기쁨을 고려하면 조금 맞지 않는 표현이지만.📍 "게다가 곰의 존재는 마치 엘리자베스 시대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인 기쁨을 주었다." 루가 곰을 마주할 때마다 그녀의 서술이 다소 현실과 멀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편안한 듯 공포스러운 듯, 애정있는 듯 무심한 듯한 곰. 마치 루가 머무르게 된 외딴 섬의 모습이 일견 척박한 듯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풍요한 - 그녀가 맛있게 먹은 곰보버섯, 캔디, 넓은 집, 빼곡한 서재 - 것과 닮아 있다. 곰은 이름 없이 그냥 곰이라고 불린다. 루가 펼쳐보는 책들에서는 여러 나라의 언어로 곰의 이름이 등장하면서도, 이 곰만을 위한 고유한 이름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공백으로 남는다. 그냥 곰. 혹은 야생동물이라고 불리우거나. 늘 질서정연한 서류 같은 삶을 살아오던 루도 곰을 곁에 두면서부터 곰의 이름없음과 비슷한 불확정적이고 비정형적인 감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녀는 제 존재를 정당화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카드와 세세한 정보와 분류가 다 무슨 소용인가? 저마다의 질서로 기록되고 분류되어 결국에는 그녀로 하여금 체계를 찾고 비밀을 파헤칠 수 있도록 해주는 그것들이 처음에는 아름다웠으나 지금에 와서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 그것들은 진실에 대한 이단일 뿐이었다." 그리고 루는 촛불을 켜도 덜어지지 않는 깊은 어둠 같은 곰에게 마치 바람 앞 촛불처럼 속절없이 흔들리며 이끌린다. 그녀는 외딴 섬 속의 혼란스러움을 조심스레 직시하며, 인간들 틈에서 책상 위에 드러눕는 하녀가 되기보다 곰과 함께 벽난로 앞에서 흐트러지기를 선택한다.📍 "그녀는 남자들의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그들이 여자에게는 에로티시즘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이 싫었다. 그로 인해 여자들은 하녀밖에 될 수 없었다." 생소하지만 점차 선명해지는 감각들은 예상치 못한 결말로 나아간다.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게 되는 소설🙆♂️#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