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을 배우다 - 어느 철학자가 인지장애를 가진 딸을 보살피며 배운 것
에바 페더 키테이 지음, 김준혁 옮김 / 반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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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샤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치명적인 강간과 살해 시도를 당했고 이를 견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성과 사고 능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고 삶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변했다.
... 스스로 가치없다고 느낄 때, 세샤가 준 것을 이해하는 일이 도움이 되었다. 만약 자족적이고, 생산적이고, 유급으로 고용될 수 있는 능력과 상관없이 세샤를 가치 있다고 여긴다면, 왜 나의 자아 존중감은 그런 것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가? 그리고 세샤는 내가 결여했으며 항상 필요로 했던 것을 가지고 있었다. 기쁨을 경험하고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능력 말이다.
나는 삶에서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그에 몰두해야 했다. 나를 지탱해준 것은 철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음악과 배움이었다. 어떻게 돌보고 돌봄을 받을지에 관한 이전보다 깊은 이해였다."

'의존을 배우다'는 독립의 환상, 자족이라는 거짓된 가정을 타파하고 제목처럼 의존을 배울 수 있도록 해 주는 책입니다. 장애, 정상성, 돌봄, 타인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다수가 당연하게 의문조차 가지지 않고 있는 오래된 돌처럼 박혀 있는 고정관념들을 부수어 주는 책이고요.

무력감과 의존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거나 철학자들이 이야기한 돌봄의 윤리를 나란히 두어 차이를 밝히는 등, 유사한 개념들을 샅샅이 비추어 비교대조하고 또 일견 매끄러워 보이는 익숙한 논증의 구조와 전제를 조목조목 짚음으로써 돌봄의 과정과 의미에 관한 막연한 이해를 명료하게 다듬어 줍니다. 그렇다고 단 한 가지의 정해진 답을 - 돌봄의 얽힌 관계 안에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 주는 책은 아닙니다. 현실에서 가능한 여러 가지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돌봄은 한층 더 다층적인 사유의 대상이 되고 배려윤리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돌봄이 불쌍한 이에게 적선을 베풀듯 던져주는 게 아니라는 점, 보살피는 이와 보살핌받는 이의 입장과 마음가짐 그리고 그들이 놓인 맥락이 부단히 상호 작동하는 복잡한 과정이라는 점을 차근차근 살피며 돌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 주는 책이었습니다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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