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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as a River : The powerful Sunday Times bestseller (Paperback) - 『흐르는 강물처럼』원서
Shelley Read / Transworld Publishers Ltd / 2024년 4월
평점 :
너무 유명한 책이라, 어느정도 줄거리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한 사람의 인생이 ‘명작’이 될 수 있는 그 요인이 뭘까 궁금했다.
역시나 영어로 된 책은 한계가 있었고, 고유명사가 나올 때 허둥대다가 결국에 한국어로 된 책을 빠르게 읽고 탐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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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이다. 두번세번 읽어도 또 다른 것들이 발견되는 명작이다.
아이올라에서 ‘파오니아’로 가는 것도 이제 전부 작가의 의도처럼 느껴진다. 개척자‘파이오니아‘라는 단어와 묘하게 닮았고, 그녀의 인생2막은 그야말로 ’개척자‘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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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철철 쏟아지는 속에 탯줄을 잘라내고, 이른 눈보라에 물컹하게 녹아버린 작물들을 망연히 바라보는 장면은 나도 모르는 여자의 삶을 보여줬다.
열두살에 엄마를 잃은 빅토리아가 초경을 맞닥뜨리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고, 태동을 느끼고, 모든 생명을 품은 것에 연민 비슷한 동질감을 느끼면서 허둥댈때, 엄마 잃은 내 삶을 대입하게 되었다. 스포당한 것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들.
“야 쉽지 않겠다 우리 삶” 이라며 언니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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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어왔던 고전, 어떤 깨달음을 향한 구도자 역할은 모두 남성의 것이었다. 막연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의 삶으로 깨달음? 아니 숭고한 행자(행동하는 사람)의 모습은 낯설었다.
아니 사실은 우리 삶이 저렇게 되리라는 거, 내가 그녀였어도 저런 선택을 했으리란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결국은 행복은 결정되었다는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어쩌면 가장 평범한 여성의 삶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청난 전쟁이고, 그래서 그 자체로 모두 숭고하다는 것을 표현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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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진화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따른다.
하지만 들뢰즈는 ‘퇴화를 겪은 것만이 진화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좀 모자란 친구들이 부족한 환경을 버티면서 진화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점차로 그 환경에 버틸수 있게 몸이 진화했을 것이라고.
우리가 원하는 발전에는 종착지가 있는 것인지, 무엇을 위한 인간의 개입이며 발전인지 빅토리아는 의문을 품는다. 나는 이 질문이 이 책을 다르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조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 여성의 본질이고 그것이 흔한 ‘영웅담’을 오직 ‘그녀의 영웅담’으로 탈바꿈됐기 떄문이다.
한 여성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원래 가진’ 힘을 발휘하며 더 강하게 만드는 과정은 (전혀 순조롭지 않지만) 정말 다정한 언어 속에서 키워진다. 미친 할머니(루비앨리스)의 장례식에서 그녀가 느낀 것들이 개인적으로 가장 압권이었다. 아 맞다. 상종못할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어.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껴안게 되면서, 거친 이들의 행동도 이해하고 포용하게 되는 그녀가 너무 멋있었고, 부러웠다.
나는 내 슬픔으로 가드를 치고, 다가오지 말라고 더 가시돋힌 말을 하고, 타인의 고통을 얕잡아보던 몇해를 보냈기에 그녀의 변화가 더 부러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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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마을에 물을 쏟아붓기 전, 힘차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그녀에게 연인이자 스승이었던 윌이 했던 말처럼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며 의연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저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했다. 그리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