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다섯 밤의 기록, 개정판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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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 아타루의 목소리를 빌려, 저도 말하듯이 생각을 읊어보겠습니다.
며칠동안 글을 쓰길 주저했습니다.
제가 한달간 본 영화는 6편, 완독한 책만 12권, 이걸 쓰는 마음에 뿌듯함이 조금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 마음이 왜 생겼는지 살펴보자 이말입니다.
책과 혁명에 관한 1시간짜리 혼잣말을 한 다섯번 기록한 책입니다.
미친듯이 정보를 취하는 것은 사실 정보에 취해진 거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합디다. 왜냐면 정보는 명령이니까요. 알면 알수록 우리의 불안은 사라지고, 이 행동의 당위성이 생기게 되니까요. 그게 정말일까요? 화자는 뭐 긍부정보다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게 말이 되냐고요.
그 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을 느끼나요. 제가 한달간 느꼈던 것을 여기서 알게 되었네요. 네 맞아요. 저의 필터대로, 해석하게 되니까 단 한권의 책을 읽은거나 진배없다는 소리입니다.

그럼 무엇을 하란말인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황해보라고 합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게 되니까, 우린 막막합니다. 허둥댑니다. ‘창피하고 어쩐지 불안하며 한심합니다.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외부의 기준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요컨대 다른 사람이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 비슷한 것에 시달리게 합니다’

그래서 어르고 달랩니다. 니체와 들뢰즈 라캉 로크 흄 뉴턴 프로이트 버지니아울프도 그러했다고 합니다.
또 저의 안테나가 여기 꽂혔네요. 철학이란, 그리고 쓰는 것이란 ‘여성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생물학적 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요. 회임을 하란 소리죠. 그게 그거 아니냐고요?

반복해서 읽고, 내안의 것을 낳는 것이라고 저는 이해했답니다.
그렇다면 아까 정보 과잉이 명령 과잉이라고 했는데 왜 다시 읽으라고 하는걸까요.
그가 읽는다고 하는 것은 “읽어도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어쩐지 싫은 느낌’이 드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묘미’이며 읽고 감명을 받아도 금방 잊어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기방어‘라고. 그러므로 다 읽으면 잊어버리고, 그래서 반복해서 읽는거라고 말이지요.”

맞아요 지금 이책이 저한테 그래요. 이건 무시무시한 철학서가 되겠구나. 읽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꾸역 꾸역 읽어요. “싫은 느낌이 들어서, 방어 반응이 있어서, 잊어버리니까, 자신의 무의식에 문득 닿는 그 청명한 징조만을 인연으로 삼아 선택한 책을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요.

아 그럼 뭘 읽어야 하나요. 책을 추천이라도 해주나요?
여기서 읽는것, 리터러시는 완전히 경계를 뛰어넘습니다. 뉴턴도 애덤스미스도 문학자들이라고 말해요. 자연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읽을 줄 아는’ 사람인거에요. 그래서 문학이라 불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파우스트박사가 성서를 번역할 때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를 결국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라고 쓰는 첫 장면 기억나시나요. 괴테의 의도가 느껴지시나요? 단순히 명령을 그러모으는 짓은 그만둬야겠어요.
그런데 좀 시니컬함에 저도 시니컬하게 대꾸해보고싶네요.
그리스 문학이 훌륭한 이유는 어딘가 좀 모자란 신들이 나와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인간들. 다신교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요. 교육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그 어딘가 숨어있을 지 모르는 그 신들, 어쩌면 인간들을 우리는 존중해요. 그리고 고마움을 배워요.
대단한 문학에 앞서, 한번 움직여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날씨가 정말 좋네요. 그 기도하는 손을 멈추고, 오늘은 산책을 해야겠어요.

#잘라라,기도하는그손을 #사사키아타루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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