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 동물원부터 생츄어리까지, 사람과 동물이 마주 선 십 년의 기록
왕민철 지음 / 문예출판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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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에게 그렇듯, 동물원은 나에게 불편한 공간이었다.

갇히고 무력해져 있는 동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여겼고, 유일한 선택은 외면이었다. 그렇게 20대 초반 이후로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방문하지 않게 된 나는 논문을 쓰면서 십수 년 만에 동물원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는데 내가 선택한 '외면'이라는 방식이 비겁하고 값싼 선택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가 왕민철 감독님의 <동물,원>이 촬영을 마치고 여기저기서 상영될 즈음이었다. 동물원 동물들의 복지와 권리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그동안에도 멈추지 않았고, 무엇보다 동물원의 내부에 있는 이들이야말로 최전선에서 오해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애써온 결과였다. 내보이기 어려운 동물원의 뒷공간과 숨겨진 이야기들, 그것을 꺼내 놓으며 동물원의 변화를 갈망하는, 바로 그 공간에서 매일 갇힌 동물을 마주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내게는 가장 큰 울림이었다.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동물원 동물들이 모두 야생으로 해방되어 나가는 꿈같은 상상을 가장 많이 하는 건 이들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외면'하는 것으로 (어쩌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려 했던 선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감독님의 어린 시절과 유학 시절, 농막과 아버지와의 시간이 교차되고, 산비탈의 동물원, 그곳의 사육사와 동물원이 싫다고 말하는 수의사가 있고, 농수로와 고라니, 그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야생동물구조센터의 사람들이 있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곰과 그들을 가둬온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동물원도, 봉명주공도, 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했지만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니 사람들과 동물들과 나무들과 새들과 동네의 이야기, 그 모든 것들이 얼키고설켜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왕민철 감독님의 다큐멘터리를 그대로 활자로 옮긴 듯하다. <동물,원>과 <생츄어리>에서 그러했듯, 감독님의 단어와 문장을 따라 나도 관찰자가 되어 공간과 사람들과 동물들을 바라본다. 휘몰아치는 감정도, 딱 떨어지는 판단도 없다. 그저 글을 따라 읽다 보니 무수한 질문들이 내 머릿속에 떠다닐 뿐이다. '생명의 존엄'같은 선언적 명제는 뜬구름 같기만 하다. 눈물을 흘리거나 안타깝거나 가엾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언제 될지 모를 거창한 일보다 사소해 보여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게 진짜인 것 같아요.(p.108)"  




"이 추모는 이미 죽은 반순이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우리에게만 의미를 갖는 독백입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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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생태사상가 - 2020 우수콘텐츠 선정작
황대권 외 27인 지음, 작은것이 아름답다 엮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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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스물 여덟의 생태사상가들은 모두 다른 공간과 시간에 이 지구별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것은, 흙과 물에서부터 작은 곤충과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에까지 이르는,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바래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기후변화로 대표되는 현시대의 거대한 환경위기는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불러 일으키고 기술과학적인 방법과 개인의 실천, 기업의 변화 등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을 찾게 한다. 과거의 우리는, 환경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일상 속 실천을 하고 기업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진보적인(혹은 급진적인) 환경운동활동가들의 몫이라 생각했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환경문제를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에는 상당한 변화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이 위기를 의식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여전히 1.5℃의 티핑포인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이것을 뒤집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그 누구도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어 보인다. 왜일까.

 


최근 1-2년간 내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분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리고 사회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이다. 하지만 자본과 이윤과 효율성을 1순위로 두고 있는 이 체제에서 동물권, 인권, 그리고 자연의 권리와 같은 이야기는 늘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래왔으며, 그것이 결국 현재 우리가 당면한 위기의 근원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본주의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준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의 마음과 정신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을까? 비인간동물과 자연에게도 풍요로운 시스템일까? 이런 물음표와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다. 마침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상가는 ‘슈마허’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슈마허가 이 책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이 마냥 우연처럼 여겨지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슈마허는 산업혁명 이후로 우리 모두가 빠져 있는 신화인 ‘성장’에 대한 성찰을 제안한다. 그리고 ‘성장 지상주의’가 만들어 놓은 세계를 성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슈마허의 책보다 더 먼저 접했던 건,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인데,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둘의 비슷한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관점과 대안제시는 무척 흥미롭다. 하지만 결국 그들을 통해 오늘의 우리가 배우게 되는 건, ‘성장’이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를 멈추어 서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의 중반부쯤 등장하는 ‘헬레나 노르베지 호지’ 역시 무척 반가웠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인 그는, 세계화가 자원낭비와 기후변화를 초래하며, 정말로 사람들을 살리는 것은 개발을 앞세운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도의 라다크 지역에서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꽤 오래 전에 <오래된 미래>를 읽으면서 라다크 지역을 여행했었던 나는 그가 말하는 ‘지역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히말라야 설산을 품은 라다크의 아름다운 풍광과 라다크 사람들의 전통과 생활모습은 ‘세계화’라는 이름 앞에서는 모두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전통과 여유와 약간의 부족함과 공동체 정신 대신에 속도와 편리함과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이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라다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까? 라다크를 여행할 때 나는, 그곳의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과 웃음이 너무 좋아서 지금 이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다. 물론, 겨울이면 도로가 얼어 이동할 수 없거나, 수도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아 생활이 불편하거나, 농작물 판매가 어려워서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문제들은 그들의 삶의 질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분명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개발’을 앞세운 다국적기업과 자본가들이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그곳에 사는 이들이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지역화’가 의미하는 한 부분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대부분의 이익은 기업과 자본가에게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말이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인 ‘지구문명의 위기를 읽다’에서는 성장 지상주의, 산업과 기술, 기계문화 등 우리를 편리와 풍요의 세계로 이끌어주었지만 동시에 위기를 안겨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한다. 두 번째인 ‘자연과 사람을 잇다’에서는 ‘자연-인간동물-비인간동물’의 연결성을 일깨워준다. 아주 당연하지만 잊고 사는. 혹은 마치 아닌 것처럼 외면하고 사는 그 신비로운 관계에 대해서. 세 번째인 ‘오래된 미래에 답하다’는 ‘로컬’이라는 것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흙에서 시작해서 흙으로 끝나는 모든 생명체와 뗄 수 없는 이야기. 농업과 식량과 지역.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가진 큰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제철’과 ‘로컬’을 생각하며 식품을 소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마지막 네 번째인 ‘지구별을 껴안다’는 다시금 모든 존재와 모든 물질과 지구의 연결성을 환기해 준다. 보다 큰 그림으로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이 책만으로 각 생태사상가의 생각을 아주 깊이 있게 알 수는 없지만, 또 충분히 알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꼭지마다 생태사상가의 대표 저서와 간단한 소개가 있어서 깊은 바다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레이첼 카슨’의 대표작은 <침묵의 봄>이지만, 내 마음속 그의 대표작은 <센스 오브 원더>이다. 거기서 레이첼 카슨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른들의 가장 큰 불행은 아름다운 것,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추구하는 순수한 본능이 흐러졌다는 데 있다.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눈을 상실하는 일은 심지어 어른이 되기 전에 일어나기도 한다. 만일 모든 어린이를 곁에서 지켜주는 착한 요정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부탁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가 지닌 자연에 대한 경이의 감정이 언제까지고 계속되게 해주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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