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목격자들 - 어린이 목소리를 위한 솔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연진희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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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독소 전쟁이 전체 비율의 80~90%를 차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실제로 독일군 사망자의 대부분이 동부 전선에서 발생했으니까. 그리고 유대인 학살은 잘 알려져 있지만 소련이 입은 피해는 큰 관심이 없는 게 보통이다. 군인 사망자가 최소 860만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1700만에 이르는 상상하기 힘든 수치임에도 종전 후 냉전이 곧 도래해서 인지 소련의 피해에 대해 관심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한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많은 영상 매체에 비해 소련이 입은 피해의 실체를 그린 작품은 소련 자체적으로 제작한 것을 제외하고는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류한수 교수님은 독소 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레닌그라드 포위로 인해 100만, 강제 노동을 통해 수백만, 피난길에 올랐다가 기아와 질병으로 수백만 등 여러 원인으로 죽어 갔지만 이것은 하나의 수치에 불과할 뿐 어떤 광경인지는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자국 국민들의 고통을 잊지 않으려고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게 아닌가 한다.그것도 전쟁 당시 가장 약자였던 어린이들의 시선을 통해 민간인들이 겪었던 고통의 실체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물론 이들은 살아 남아 인터뷰에 응할 당시는 이미 성인이었지만 전쟁 당시의 고통은 평생 그들과 함께 한다. 그렇기에 그 고통이 잊혀지지 않고 평생 그들과 함께 했고 선명한 기억으로 떠올릴 수 있었을 것 같다. 게다가 가장 약자인 어린이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가감없이 그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어머니가 미인이라는 게 결코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일찍 깨닫게 된 소녀,13살에 이미 가장이 되서 집을 고치고 헛간을 짓는 등 노동이 일상이 된 소년,엄마들의 품에서 아기를 뺏어 학살하는 광경을 목격한 어린이,한쪽 눈을 잃고 예전과 달리 웃지 않는 엄마 앞에서 억지 웃음을 지으며 밤마다 홀로 우는 소녀, 전후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부모를 지켜보는 아이들...(책에 실린 수많은 사연은 사실 훨씬 참혹하다.)


전쟁을 목격한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전쟁 도중 태어난 아이들조차 전쟁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현실은 이 전쟁이 소련 국민들에게 남긴 물질적 정신적 육체적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몇 백만이라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그들의 실체적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자세는 비단 이 작가가 처음이 아니라 이미 종군 기자였던 바실리 그로스만의 글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러시아 문학에 이어져 온 하나의 전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한 든다.


피에 젖은 땅의 저자 티모시 스나이더는 말한다. 100만명이 학살당한 게 아니라 100만 번의 살인이 일어난 것이라고.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 한명 한명의 이름과 사연을 기억해야 한다고. 이 책의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일관되게 보여준 글쓰기 방식은 아마 이런 목적을 위해 취한 게 아닐까? 세상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직접 듣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이 겪었던 마음의 상흔이 조금은 지워졌기를 바란다.이와 더불어 한 국가로서 러시아 정부를 향한 국제 사회의 적대감이 그 국민들에게까지 향하지는 않기를, 만약 그들이 서방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왜 그런지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졌으면 어떨까 한다.나폴레옹 전쟁과 독소 전쟁을 통해 초토화된 국가를 경험한다면 언젠가는 또 저들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라는 트라우마를 가지지 않기란 힘들테니 말이다. 


독소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들 중 생존자는 이제 많지 않을 것 같고 당시 유년 시절을 보낸 이들만이 살아 남았으리라.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 마지막 목격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이들의 눈에 비친 전쟁의 고통과 상처가 잊혀지지 않도록 기록한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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