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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청춘의 창 - 잡지를 통해 본 근대 초기의 일상성 ㅣ 이화 한국학총서 3
권보드래 외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7년 7월
평점 :
아마도 중학교 때인가, 아니 고등학교 때인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국어책', 에서 보았던 것 같은 최남선, 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그리고 날렵하게 돼지꼬리를 빨갛게 말아그려넣고 적어야 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 이 시가 실린 잡지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 '소년'지. 1900년에서 1910년에 이르기까지 발간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교양지라고 할 수 있는 '소년' 지 에 대해서 내가 '탈탈 턴' 기억의 전부는 고작 이것 뿐이었다. 이 책을 찾게 된 키워드는 사실 잡지도, 우리나라 최초의 무엇도 아닌, '일상성' 이었기에, 검색 중에 만난 이 책이 그 근거를 '잡지'에 두고 있다는 것이 조금 생경스럽기도 했지만, 머리를 하러 갈 때면 어쩔수 없이 탐독하게 됬던 잡지의 면면을 떠올려봤을 때, '아하', 싶은 긍정의 구석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하이데거의 존재론, 부터 시작하여 앙리 르페브르의 현대인의 일상성까지, '일상성' 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은 많이 다루어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네이버의 무려 '철학사전'에 올려져있는 일상성에 대한 정의, '그저 빈둥빈둥 사는 인간존재의 가장 평균적인 일상생활 태도를 나타내는 말' 이 정말 와닿더라는. 특히 '빈둥빈둥'이란 표현을 누가 감히, 무엇을 정의하는데 쓸 수 있을까 싶기도.. 언제부턴가 정치, 역사, 사회, 와 같은 거대담론의 주제가 갖는 영역에서 다소 벗어난 '일상성' 에 대한 연구들이 부지런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칫하면 한낱 흥미 위주의 화제꺼리에 대한 탐구, 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일상성에 대한 연구가 가지고 있는 근본 속성의 하나, 라고 할 수 있는 '급진성' 만큼은, 정신이 '확' 들만큼의 무엇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그저 빈둥빈둥 사는 인간존재의 가장 평균적인 일상을, 그 연구의 주제로 다룬다는 점부터가 말이다..
중년의 지식인들이 '계몽' 과 '열혈 애국주의'를 표방하며 발간한 '소년 한반도'와 같이, 특정 학회나 단체를 배경으로 이른바 '관보지' 성격의 잡지들만이 존재하던 시절,'소년'(1908-1911)과 '청춘'(1914-1918)의 발간은, 스스로 감각을 창안하고 독자를 획득해가야하는 부담백배를 안는 일이었다. 이러한 부담을 해결하고자 했던 가장 큰 노력은, 읽는 책에서 보는 책으로의 비약을 선언한 잡지의 시각화, 에서 먼저 나타났다. 이는 언어텍스트만 빽빽하게 채워진 다른 잡지들과 차별되는 디자인 감각은 물론이며, 색과 삽화, 사진 등을 전면적으로 잡지에 채용함으로써 근대문명에 대한 시각적 경험을 일차적으로 제공할 뿐더러, 체험할 수 없는 공간과 인물들에 대한 감각을 지극히,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어놓는 장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하나의 기치는, 잡지의 생명성, 이라고 할 수 있는 '잡종성雜種性'을 선도적으로 구현한 점이다. 이는, 약관 19세의 최남선이 일본에서의 유학생활동안 경험한 출판문화계에 대한 문화적 쇼크와 당시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박람회'가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세상의 천차만별의 물건들이 한 장소에 나열되어있듯이, 잡지를 다양한 지식의 진열장으로 만들고자 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잡지 '소년'과 '청춘'에 게재가 되었던 꼭지들은, '잡종성'에 걸맞게 인물, 역사, 과학, 문학, 어휘, 상식, 유머 등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것부터 전문적인 지식까지 망라되어있어, 서구문명의 건설과 호기심, 신사, 기차, 제복, 과 같은 신문물의 체험기, 특히 '미신'이 종교였던 당시 자연과학이 얼마만큼 '경이롭게' 수용되고 있었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돈이 없어도 70원, 80원씩 하던 양복을 사입고, 일이 없어도 인력거나 마차, 자동차를 불러타며, 처자식은 굶는데 신사가 되기위해 아낌없이 돈을 털던 유행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 '냉매열평冷罵熱評'과 '그래 너 잘 있더냐' 하며 부산에서 경부선 기차를 타고 남대문 정거장으로 돌아오는 '세계일주가', 예수나 플라톤, 과 같은 대사상가나, 다윈이나 와트와 같은 발명가가 되지 못할꺼면, 하루바삐 죽어서 밥보탬이나 하는게 당연하다는, 무지 격한 논설 '읏더한 사람이 되어야 할고' 에 이르기까지, 문득문득 어이가 없을만큼의 생활이 그 시대의 일상이었다고는 하나, 현재를 사는 나로서는 그런 발상 자체가 너무나 '탈일상' 스러워서, 잠시 혼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더라는.
부제는, 잡지를 통해 본 근대 초기의 일상성, 이지만, 사실 느낌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잡지가 사람들의 감각과 생활을 '일상화'시키는 과정, 을 치밀하게 지켜본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패션잡지가 '트렌드'를 소개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소개'라기 보다는 독자들에게 '주입'되는 효과를 노린, 잡지사와 결탁한 여러 작전세력들의 다소 관행화된 상술이라는 배경이 있음을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 최초의 '무엇'에 다소 외람되긴 하겠지만, 그 맥이 닿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 시대에는 그런 상업적인 '속셈'을 차릴 수 있는 하부토대, 들이 거의 전무했으므로, 등가로 평가해서는 절대로 안될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뭔 일만 났다하면, 공부 좀 많이 하신 분들이 늘 입에 달고사는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의 파행과 오류, 를 조금 들쳐보게된 것도 같다는 생각. '개인'은 없고 평등과 형평만 있었던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과 똑같이, 욕망하고 갈망하던 근대문명과 지식, 그 찬란한 감각들이, '일상화'라는 이름으로 단숨에 일반적인 것으로, 하찮은 것으로, 흔한 지식으로 만들어지고, 그래서 모두가 '평등하지' 않은가, 였다는 것이 다 읽고나서 뒤늦게 깨달아지니, '일상성' 에 대한 연구라고 해서 조금 들떠서 보았던 것이 '떨떠름' 하기도.. 오히려 근대문명을 선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유포'하려했던 '소년'과 '청춘'이 밟은 우리나라 근대화과정의 축소판, 이라는 주제가 더 맞았던 것이 아닐까도 싶다는, 주제넘는 판단도 해본다..(20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