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베스트셀러 - 조선 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문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26
이민희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작가는 몇년 전 동창회 커뮤니티에 책을 하나 내게 되었다고 인사글을 올린 이후, 그 이후로도 내 기억에 두세권의 책은 더 냈던, 그야말로 존경스런 친구이다. 당시에는 그 책들을 볼 엄두를 못내다가, 얼마전 불쑥 떠올라 검색을 하고 그 중 한권을 대출한 것이 바로 이 '조선의 베스트셀러'. 내가 알기론 18, 19세기 조선의 '책 중개상'과 '책 대여점'을 다룬 이 책의 내용이 그의 대다수 논문의 주제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후, 이른바 조선에 '소설'의 시대가 도래하고, 중국소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번역한 국문소설도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어려운 한문소설을 읽을 수 없었던 사대부 여성과 중인, 일반 서민층도 폭넓게 '독서'의 향연에 빠지게 된다. 지금이나 그때나, 책이란 것을 일일이 다 사읽기엔 버거운 건 마찬가지라, '빌려읽기'가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세책貰冊 ' 이다. 간단히 말해 세책, 은 전문필사자가 필사한 책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상업적 도서유통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이 때 유통되던 고소설들을 흔히 '세책본 고소설' 이라고 한다. 조선후기의 세책점은, 요즘의 도서대여점과 그 형태가 비슷하며, 이 세책의 초보적 형태는 또 '책괘'라 불리는 서적중개상, 그러니까 쉽게 말해 서적 '외판원'에 두고 있다

이 책괘, 가 책을 팔러 돌아다니다보니, 한권 팔아선 대중의 욕구를 다 채울수도 없을뿐더러, 여러권을 갖고 빌려주고 돈을 받는 것이 이문도 남는지라, 필사자를 하나 구해, 책을 베끼라, 짱박아놓고 베껴내는 족족, 그것들을 빌려주며 돌아다니다가, 아예 점포를 차리고 주저앉은 것이 그러니까 세책, 인 셈. 능력있는 세책업자는 필사자도 여럿을 두었고, 하나의 소설을 수십권씩 필사본으로 소장하는 등의 능력을 과시했다고도 한다. 이 때 가장 많은 필사본을 거느린 책이 나름 당시 조선의 베스트셀러이며 곧, 스테디셀러이기도 했던 것인데, 당시 사대부집안의 여인들은 물론 궁중의 여인들까지도 빌려 보느라 비녀를 팔고,팔찌를  팔고 빚을 내기까지 했다는 조선의 베스트셀러, 그것은 주로 남녀상열지사, 가 으뜸인 '옥루몽', 이었다고. 지루한 유교사회의 속박에 억눌렸던 여인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옥루몽', 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세책본의 책은 책장을 넘길 때 침을 묻혀 손가락으로 넘기게 되는 부분은 두세글자 덜 써줌으로써 글자가 번지거나 없어지는 것을 방지했던 '센스'가 돋보이고, 행여 대여자가 맘에 드는 페이지를 찢어가게 될 경우, 쉽게 적발하기 위해 각 페이지마다 번호를 매겨놓은 것도 한 재미를 준다. 게다가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 악플, 이라고 할 수 있을 '댓글놀이'들이 세책본 소설에서 확인이 되는데, 이를테면, '책주인 들어보소, 이 책이 단권인데 네권으로 만들고 남의 재물만 탐하니 그런 잡놈이 어디있느냐',' 이 책을 세놓는 사람은 망하고 빌어먹고 보는 사람은 죽고 남지 못하랴' 식의 낙서가 페이지마다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세책점 주인 역시 '착실히 보시고 부디 낙장은 마옵소서', '책장을 흐리거나 상하게 하면 정가금대로 처함, 벌금 30전' 과 같은 경고성 문구를 남긴 흔적도 현존하는 세책본 고소설에 확연하게 남아있다.

근대적 서점이나 물류유통망이 형성되기 전 '서적중개상'인 책괘, 의 전문적인 유통마인드가 당시 소설의 상품가치를 인식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세책업'은  조선후기 시민사회의 제대로된 흥행코드로, 또 문화산업으로 한시대를 풍미하였지만, 1907년 신소설이 나오고 1910년 구활자본 소설이 등장하면서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되었다. 발달된 기술로 신간서적을 세책, 보다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된 것도 이유이며, 우선은 일제점령하, 소설따위를 볼 여유란 것도 없어졌다는 것, 전국 각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던 중국의 세책 이나 일본의 '카시혼야' 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세책은 '경성'에만 있었던 터라, 조선인이 만주, 연해주 등으로 대다수 이주해간 후, 일본인들이 대체로 남은 경성에서 국문소설의 대여가, 흥할리는 없었던 것이다.

참 그 친구의 가늠되는 성격만큼이나 꼼꼼하게 잘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논문의 흔적이 보이는 것도 전혀 거슬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논문은 꼭 써야되겠구나,, 싶은 생각마져 들게 한페이지도 허술하지 않고 탄탄했던 책, 이다. 규방 여성을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의 독서풍경, 조선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빗대 정리한 당시 상업출판의 경향, 지도로 본 세책점 거리의 묘사와 도시의 풍광,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세책점은 물론, 중국, 일본, 유럽의 세책, 까지 아울러 비교하는 가운데 자신이 현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의 보편성과 특수성,까지 단단하게 매듭을 짓는 것을 보면서, 또다른 선배 누군가가 '난놈은 난놈이야' 했던 옛 기억까지 기어이 떠오르고 말았다는. 아무튼, 무릇 이제 연구의 대세, 는 '일상'과 '일상성'에 대한 것인가 싶게, 다시금 '뜬구름' 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책. (20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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