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청춘의 창 - 잡지를 통해 본 근대 초기의 일상성 이화 한국학총서 3
권보드래 외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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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중학교 때인가, 아니 고등학교 때인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국어책', 에서 보았던 것 같은 최남선, 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그리고 날렵하게 돼지꼬리를 빨갛게 말아그려넣고 적어야 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 이 시가 실린 잡지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 '소년'지. 1900년에서 1910년에 이르기까지  발간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교양지라고 할 수 있는 '소년' 지 에 대해서 내가 '탈탈 턴' 기억의 전부는 고작 이것 뿐이었다. 이 책을 찾게 된 키워드는 사실 잡지도, 우리나라 최초의 무엇도 아닌, '일상성' 이었기에, 검색 중에 만난 이 책이 그 근거를 '잡지'에 두고 있다는 것이 조금 생경스럽기도 했지만, 머리를 하러 갈 때면 어쩔수 없이 탐독하게 됬던 잡지의 면면을 떠올려봤을 때, '아하', 싶은 긍정의 구석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하이데거의 존재론, 부터 시작하여 앙리 르페브르의 현대인의 일상성까지, '일상성' 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은 많이 다루어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네이버의 무려 '철학사전'에 올려져있는 일상성에 대한 정의, '그저 빈둥빈둥 사는 인간존재의 가장 평균적인 일상생활 태도를 나타내는 말' 이 정말 와닿더라는. 특히 '빈둥빈둥'이란 표현을 누가 감히, 무엇을 정의하는데 쓸 수 있을까 싶기도.. 언제부턴가 정치, 역사, 사회, 와 같은 거대담론의 주제가 갖는 영역에서 다소 벗어난 '일상성' 에 대한 연구들이 부지런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칫하면 한낱 흥미 위주의 화제꺼리에 대한 탐구, 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일상성에 대한 연구가 가지고 있는 근본 속성의 하나, 라고 할 수 있는 '급진성' 만큼은, 정신이 '확' 들만큼의 무엇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그저 빈둥빈둥 사는 인간존재의 가장 평균적인 일상을, 그 연구의 주제로 다룬다는 점부터가 말이다.. 

중년의 지식인들이 '계몽' 과 '열혈 애국주의'를 표방하며 발간한 '소년 한반도'와 같이,  특정 학회나 단체를 배경으로 이른바 '관보지' 성격의 잡지들만이 존재하던 시절,'소년'(1908-1911)과 '청춘'(1914-1918)의 발간은, 스스로 감각을 창안하고 독자를 획득해가야하는 부담백배를 안는 일이었다. 이러한 부담을 해결하고자 했던 가장 큰 노력은, 읽는 책에서 보는 책으로의 비약을 선언한 잡지의 시각화, 에서 먼저 나타났다. 이는 언어텍스트만 빽빽하게 채워진 다른 잡지들과 차별되는 디자인 감각은 물론이며, 색과 삽화, 사진 등을 전면적으로 잡지에 채용함으로써 근대문명에 대한 시각적 경험을 일차적으로 제공할 뿐더러, 체험할 수 없는 공간과 인물들에 대한 감각을 지극히,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어놓는 장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하나의 기치는, 잡지의 생명성, 이라고 할 수 있는 '잡종성雜種性'을 선도적으로 구현한 점이다. 이는, 약관 19세의 최남선이 일본에서의 유학생활동안 경험한 출판문화계에 대한 문화적 쇼크와 당시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박람회'가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세상의 천차만별의 물건들이 한 장소에 나열되어있듯이, 잡지를 다양한 지식의 진열장으로 만들고자 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잡지 '소년'과 '청춘'에 게재가 되었던 꼭지들은, '잡종성'에 걸맞게 인물, 역사, 과학, 문학, 어휘, 상식, 유머 등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것부터 전문적인 지식까지 망라되어있어, 서구문명의 건설과 호기심, 신사, 기차, 제복, 과 같은 신문물의 체험기, 특히 '미신'이 종교였던 당시 자연과학이 얼마만큼 '경이롭게' 수용되고 있었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돈이 없어도 70원, 80원씩 하던 양복을 사입고, 일이 없어도 인력거나 마차, 자동차를 불러타며, 처자식은 굶는데 신사가 되기위해 아낌없이 돈을 털던 유행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 '냉매열평冷罵熱評'과 '그래 너 잘 있더냐' 하며 부산에서 경부선 기차를 타고 남대문 정거장으로 돌아오는 '세계일주가', 예수나 플라톤, 과 같은 대사상가나, 다윈이나 와트와 같은 발명가가 되지 못할꺼면, 하루바삐 죽어서 밥보탬이나 하는게 당연하다는, 무지 격한 논설 '읏더한 사람이 되어야 할고' 에 이르기까지, 문득문득 어이가 없을만큼의 생활이 그 시대의 일상이었다고는 하나, 현재를 사는 나로서는 그런 발상 자체가 너무나 '탈일상' 스러워서, 잠시 혼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더라는.

부제는, 잡지를 통해 본 근대 초기의 일상성, 이지만, 사실 느낌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잡지가 사람들의 감각과 생활을 '일상화'시키는 과정, 을 치밀하게 지켜본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패션잡지가 '트렌드'를 소개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소개'라기 보다는 독자들에게 '주입'되는 효과를 노린, 잡지사와 결탁한 여러 작전세력들의 다소 관행화된 상술이라는 배경이 있음을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 최초의 '무엇'에 다소 외람되긴 하겠지만, 그 맥이 닿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 시대에는 그런 상업적인 '속셈'을 차릴 수 있는 하부토대, 들이 거의 전무했으므로, 등가로 평가해서는 절대로 안될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뭔 일만 났다하면, 공부 좀 많이 하신 분들이 늘 입에 달고사는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의 파행과 오류, 를 조금 들쳐보게된 것도 같다는 생각. '개인'은 없고 평등과 형평만 있었던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과 똑같이, 욕망하고 갈망하던 근대문명과 지식, 그 찬란한 감각들이, '일상화'라는 이름으로 단숨에 일반적인 것으로, 하찮은 것으로, 흔한 지식으로 만들어지고, 그래서 모두가 '평등하지' 않은가, 였다는 것이 다 읽고나서 뒤늦게 깨달아지니, '일상성' 에 대한 연구라고 해서 조금 들떠서 보았던 것이 '떨떠름' 하기도.. 오히려 근대문명을 선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유포'하려했던 '소년'과 '청춘'이 밟은 우리나라 근대화과정의 축소판, 이라는 주제가 더 맞았던 것이 아닐까도 싶다는, 주제넘는 판단도 해본다..(2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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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사드 카하트 지음, 정영목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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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쯤 가량 대기를 했었고, 무려 '음대도서관'에까지 발걸음을 해서 빌려온 책.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땐, '좌안'이 뭐지, 혼자 생각을 했더랬지, 들었던 여러가지 생각 중에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던 나의 추리 하나는, 파리'쟝' 혹은 파리'지엔'을 이렇게도 표기하는걸까, 였다는 후후. 책에서 얻은 해답은, 파리를 남북으로 가르는 '센 강'을 따라 동서로 걷다보면, 남쪽 반은 왼쪽에 있어 '좌안左岸'이라고 부른다는 것. 그러니까 이 책은 파리의 남쪽 반에 있는 어떤 동네의 '피아노공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

얼마간 일을 쉬게되면서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의 유치원 등교를 책임져야했던 사드 카하트, 가 우연히 동네골목에서 피아노공방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사실 여러가지로 '예측'을 깨는 스토리, 임을 먼저 말해야겠다. 어렸을 적 손가락을 빨며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 혹은 피아노가 갖고 싶어, 안달하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적어도 아니라는 것. 더더군다나, '공방' 이라는 제목답게, 하나의 기계장치, 로서의 피아노 설계에 대한 기술적 묘사가 자칫하면 나의 인내, 를 넘어설뻔하게 많이 나온다는 것. 급기야, 자꾸 이렇게 나온다면 내가 '서양건축사'를 옆에 펼쳐놓고 함께 읽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게, 프랑스에 사는 미국인인, 주인공은 너무나 해박한 프랑스 건축양식의 역사를 피아노 다리에서까지 찾아낸다는 것.. 몇몇의 서평들이 경고했던 '전문성' 을 살짝 무시하고, 무례하게 그저 '원미동 사람들' 쯤이려니 했던 나는, 조금 당혹도 했더라는 고백. 

공방의 주인인 '뤼크'와 그를 둘러싼 동네 친구들, 그리고 사드 카하트가 맺는 관계는 절대적으로 '피아노'에 의한 것이었기에, 그나마 들은 구석으로 '스타인웨이'가 전부였던 나는, 프랑스의 에라르, 플레엘은 물론, 오스트리아의 슈팅글, 독일의 베흐슈타인, 이탈리아의 파지올리, 까지 외우듯 읋어대야만 했고, 업라이트, 그랜드, 베이비그랜드, 는 물론 무려 거슬러올라 '하프시코드'의 발명기에까지 발을 디뎌야만 했다. 그뿐일까, 캐비닛과 페달, 펠트, 댐퍼, 해머, 에 이르는 다양한 피아노 부속품의 기능은 물론이며, '이게 어떻게 소리가 나는 거에요' 질문한 주인공 아들넘이, 건반을 누르면 펠트로 덮힌 해머가 작동하고 이 해머가 그 건반에 조응하는 특정한 현을 때림으로써 가능하다고 '지아빠'가 말했는데도, '더더 구체적으로요' 하는 바람에, 현의 진동, 장력, 1초당 4천 헤르츠, 까지 기어이 등장하는 작동원리에 대한 학습도 피할 수 없었다는.

그러나, 그저 과시용으로 살롱에 피아노를 죽여놓은 채 놔둘꺼라면, 메르세데스 벤츠, 를 갖다놓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분통,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항하여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콩쿨에 대한 비판, 건반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코끼리가 죽어가야했느냐에 대한 반성, 모두들 피아노를 '노래'하게 하려고 하지만, 결국 피아노는 타악기일뿐이라는, 세상의 모든 진지한 피아니스트가 직면하는 기본적인 문제, 오랜 전통의 유럽 피아노 제조사가 합병이 되고 문을 닫으면서 이제 미국으로,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 '영창 피아노'가 언급된다 - 아시아로 피아노 제작의 대세가 옮겨가고 있음에 대한 개탄, 기계적으로 정확한 것과 음악적으로 매력적인 것을 조화해내야만 하는 조율사의 애환까지.. 이 책은 그들이 왜 그리고 얼마만큼 피아노를  끔찍히 사랑하고, 그래서 또 피아노와 함께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삶의 단편들을 너무나 꼼꼼하게 펼쳐놓고 있기에,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그 무서운 전문적 지식도 차마 모른척 은근슬쩍 넘어갈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매력, 을 갖고 있는 듯하다..

파리에 살아본 적은 커녕, 가본 적도 없기에, 파리 좌안의 그 동네가 어디인지, 떠올려볼 수 없다는게 안타까왔고 알고 있는 동네라면, 정말 절절하게 그리워질만큼 동네 구석구석의 풍경, 과 건축물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이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있는 책. '뤼크'가 어떤 얼굴로 작업실의 뒷문을 열고 공방으로 들어설지, 조율사 요스, 는 어젯밤 와인에 또 얼마나 절어서 엉뚱한 기차에 실려가고 있을지, 장 폴네 담벼락 앞에선 오늘은 누가 그의 연주를 듣고 있을지, 알지도 못하는 등장인물들의 일상이 '궁금해지도록' 만드는 재주를 가진 책, 이다. 입에 '풀칠'할 밥벌이를 위해 피아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나 마음 속에 숨겨두었던 피아노에 대한 사랑을 느즈막히 꺼내보게 된 사드 카하트나 모두 제각각 자기만의 방식으로 피아노와 연애를 하고 있는 책이며, 그 각각의 다양한 연애담이 와인과 치즈와 곁들여 넘쳐나는 소박한 파티를 숨어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의 책. (20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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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창, 고급호텔 - 아시아 고급호텔의 현대성, 도시 역동성, 사교문화
발레리 줄레조 외 지음, 양지윤 옮김 / 후마니타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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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교수님이 처음으로 설계 스튜디오 수업이 아닌, '아파트'라고 할 수 있는 공동주택, 에 대한 계획수업을 하셨을 때, 발레리 줄레조, 라는 한 프랑스 여성이 쓴, '한국의 아파트 연구' 라는 책을 소개해주셨더랬다. '뭐더러' 프랑스 여자가 한국 아파트까지 연구를 했을까 싶은 맘과 한편 오죽하면 한국의 아파트가 다른나라 사람들의 연구대상이 될까 싶은 생각으로 책을 사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뭐라 참 표현하기 힘들만큼 그 내용이 쉽고도 아프게, 와 닿았더라는 것. 몇 년 후 이 책은 출판사를 바꾸어 '아파트공화국'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으로 다시 출간이 된 듯하고, 이 때의 인연인지, 같은 출판사에서 발레리 줄레조를 비롯한, 프랑스의 보편지리학 관련 연구자들이 저술한 이 책을 또 내놓게 된 듯하다. 워낙 발레리 줄레조, 란 사람의 정연한 글과 뭔가 색다른 관점이 맘에 들었던 탓에, 무지하게 반가웠다는. 

고급호텔, 이라는 다소 의외적인 주제를 대상으로 한국과 일본, 중국 그리고 홍콩의 이른바 '쟁쟁한' 호텔들이 보여주는 건축적, 문화적, 사회적 차원의 영향과 그 반영을 각 도시, 특히 '아시아'의 도시라는 특수성을 기초로 서술하고 있는 책. 일본의 경우 메이지 시대의 '로쿠메이칸'으로부터 데이코쿠 호텔까지, 한국의 경우 조선호텔과 반도호텔, 그리고 롯데호텔, 이어 강남의 고급호텔을 사례로, 중국은 리쉰더호텔, 을 시작으로 몇개의 외국계 체인호텔, 마지막으로 홍콩은 페닌슐라 호텔과 만다린오리엔탈 호텔, 이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러한 호텔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건축과정과 건축 이후 하나의 '도시적 대상'으로 이들 호텔이 도시에서 갖는 도시성과 표상적 상징체계에 대한 의문과 해답이 전개되는 가운데, 동아시아가 가진 특수성을 감안한 다양한 관점에서 내용은 진행이 된다. 가장 특징적이며 재미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주변상황 덕분에 사람의 가치가 높아지는 아주 특별한 기회를 제공하는 만남의 장소' 라는 다소 긴 설명으로 정의될 수 있는 '사교장소'라는 것

양적 규모가 아닌 질적 특성에 따라 정의될 수 있는 고급호텔은 백프로 19세기 서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대적인 건설과 통신기술, 도시구조를 변화시킨 새로운 건축이론이 낳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기념비적 건축물과 경관으로 도시경관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고급호텔만한 것도 없다고 할 수 있을만큼. 아시아의 경우 근대화시기 문호개방과 함께 서구인들과의 관계맺음의 대표적인 장소로서 고급호텔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게 되며, 어쩌면 바로 이런 태생의 배경이 아시아의 고급호텔들로 하여금 특별한 사교공간, 이국적인 '다른 어디가 특별한 곳'으로의 지향을 지속하게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연구사례로 등장한 호텔 중 죄다 가본 곳이 없고 후후. 한국의 몇몇 호텔 정도가 경험치라,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한국사람인 탓에, 한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 내용이 눈에 속속 들어올 수밖에 없었는데, 거듭 이야기하지만, 이 사람 '발레리 줄레조'는 정말 한국에 강하다. 입은 근질근질한데 맴맴 돌기만 하던 무엇을 툭, 꺼내보여주는 베짱이 남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된 것 같다. 아파트 연구에서도 그러하고 그녀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국의 중산층. 그리고 그 중산층이 '기를 쓰고'  향유하고자 하는  다소 세련되고 우월한 도시성을 '낳아주느라'  시달리는 서울의 모습이다. 병적이거나 혹은 재미있거나, 이상하거나 혹은 특이한 서울의 모습들이 그녀의 눈에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확인하는 맛이 남다르긴 하지만, 무엇보다 모종의 '대리체험'을 할 수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나는 말하기 힘든, 내가 말하면 '씨도 안먹힐', 그러니까 한국에 산다는 바로 그 '경계선' 안쪽의 사람으로서는 참 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당당하게 '경계선 위'의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나 부럽다는 것.

도서관에서 이 책이 건축이나 도시가 아닌, '관광' 서고에 꽂혀있었던 점은 정말로 도서의 제목이 갖는 '힘'을 깨닫게 해준다. 작가가 서문에서 참으로 부단히도 이 책은 관광이나 호텔, 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건만, 서문 따위까지 읽어가면서 서고에 책을 정리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알라딘도 그러하고 학교 도서관도 그러하고 가끔 책 제목으로 인해 엉뚱한 카테고리나 서고에 책이 들어가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뭔가 정정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문헌정보학' 적으로 통칭되는 분명 내가 모르는 어떤 '룰'이 그 세계에 있을 것이 분명할 것 같아, 그러저러 넘어간다. 책을 읽고나니 홍콩의 만다린오리엔탈 호텔과 페닌슐라 호텔은 꼭 한번 가보고 싶다. 두 호텔이 사뭇 경쟁적인 구도로 홍콩 안에서 식민주의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극복하고 현대성을 창출하는 서로 다른 방편을 구사해왔던 일련의 과정이 사뭇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보는 것 마냥 흥미로왔던 탓이다..(2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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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베스트셀러 - 조선 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문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26
이민희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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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는 몇년 전 동창회 커뮤니티에 책을 하나 내게 되었다고 인사글을 올린 이후, 그 이후로도 내 기억에 두세권의 책은 더 냈던, 그야말로 존경스런 친구이다. 당시에는 그 책들을 볼 엄두를 못내다가, 얼마전 불쑥 떠올라 검색을 하고 그 중 한권을 대출한 것이 바로 이 '조선의 베스트셀러'. 내가 알기론 18, 19세기 조선의 '책 중개상'과 '책 대여점'을 다룬 이 책의 내용이 그의 대다수 논문의 주제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후, 이른바 조선에 '소설'의 시대가 도래하고, 중국소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번역한 국문소설도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어려운 한문소설을 읽을 수 없었던 사대부 여성과 중인, 일반 서민층도 폭넓게 '독서'의 향연에 빠지게 된다. 지금이나 그때나, 책이란 것을 일일이 다 사읽기엔 버거운 건 마찬가지라, '빌려읽기'가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세책貰冊 ' 이다. 간단히 말해 세책, 은 전문필사자가 필사한 책을 돈을 받고 빌려주는 상업적 도서유통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이 때 유통되던 고소설들을 흔히 '세책본 고소설' 이라고 한다. 조선후기의 세책점은, 요즘의 도서대여점과 그 형태가 비슷하며, 이 세책의 초보적 형태는 또 '책괘'라 불리는 서적중개상, 그러니까 쉽게 말해 서적 '외판원'에 두고 있다

이 책괘, 가 책을 팔러 돌아다니다보니, 한권 팔아선 대중의 욕구를 다 채울수도 없을뿐더러, 여러권을 갖고 빌려주고 돈을 받는 것이 이문도 남는지라, 필사자를 하나 구해, 책을 베끼라, 짱박아놓고 베껴내는 족족, 그것들을 빌려주며 돌아다니다가, 아예 점포를 차리고 주저앉은 것이 그러니까 세책, 인 셈. 능력있는 세책업자는 필사자도 여럿을 두었고, 하나의 소설을 수십권씩 필사본으로 소장하는 등의 능력을 과시했다고도 한다. 이 때 가장 많은 필사본을 거느린 책이 나름 당시 조선의 베스트셀러이며 곧, 스테디셀러이기도 했던 것인데, 당시 사대부집안의 여인들은 물론 궁중의 여인들까지도 빌려 보느라 비녀를 팔고,팔찌를  팔고 빚을 내기까지 했다는 조선의 베스트셀러, 그것은 주로 남녀상열지사, 가 으뜸인 '옥루몽', 이었다고. 지루한 유교사회의 속박에 억눌렸던 여인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옥루몽', 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세책본의 책은 책장을 넘길 때 침을 묻혀 손가락으로 넘기게 되는 부분은 두세글자 덜 써줌으로써 글자가 번지거나 없어지는 것을 방지했던 '센스'가 돋보이고, 행여 대여자가 맘에 드는 페이지를 찢어가게 될 경우, 쉽게 적발하기 위해 각 페이지마다 번호를 매겨놓은 것도 한 재미를 준다. 게다가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 악플, 이라고 할 수 있을 '댓글놀이'들이 세책본 소설에서 확인이 되는데, 이를테면, '책주인 들어보소, 이 책이 단권인데 네권으로 만들고 남의 재물만 탐하니 그런 잡놈이 어디있느냐',' 이 책을 세놓는 사람은 망하고 빌어먹고 보는 사람은 죽고 남지 못하랴' 식의 낙서가 페이지마다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세책점 주인 역시 '착실히 보시고 부디 낙장은 마옵소서', '책장을 흐리거나 상하게 하면 정가금대로 처함, 벌금 30전' 과 같은 경고성 문구를 남긴 흔적도 현존하는 세책본 고소설에 확연하게 남아있다.

근대적 서점이나 물류유통망이 형성되기 전 '서적중개상'인 책괘, 의 전문적인 유통마인드가 당시 소설의 상품가치를 인식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세책업'은  조선후기 시민사회의 제대로된 흥행코드로, 또 문화산업으로 한시대를 풍미하였지만, 1907년 신소설이 나오고 1910년 구활자본 소설이 등장하면서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되었다. 발달된 기술로 신간서적을 세책, 보다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된 것도 이유이며, 우선은 일제점령하, 소설따위를 볼 여유란 것도 없어졌다는 것, 전국 각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던 중국의 세책 이나 일본의 '카시혼야' 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세책은 '경성'에만 있었던 터라, 조선인이 만주, 연해주 등으로 대다수 이주해간 후, 일본인들이 대체로 남은 경성에서 국문소설의 대여가, 흥할리는 없었던 것이다.

참 그 친구의 가늠되는 성격만큼이나 꼼꼼하게 잘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논문의 흔적이 보이는 것도 전혀 거슬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논문은 꼭 써야되겠구나,, 싶은 생각마져 들게 한페이지도 허술하지 않고 탄탄했던 책, 이다. 규방 여성을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의 독서풍경, 조선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빗대 정리한 당시 상업출판의 경향, 지도로 본 세책점 거리의 묘사와 도시의 풍광,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세책점은 물론, 중국, 일본, 유럽의 세책, 까지 아울러 비교하는 가운데 자신이 현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의 보편성과 특수성,까지 단단하게 매듭을 짓는 것을 보면서, 또다른 선배 누군가가 '난놈은 난놈이야' 했던 옛 기억까지 기어이 떠오르고 말았다는. 아무튼, 무릇 이제 연구의 대세, 는 '일상'과 '일상성'에 대한 것인가 싶게, 다시금 '뜬구름' 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책. (20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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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 - 말의 권위자 다카시가 들여다본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윤정 옮김 / 글담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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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업의 정석, 이라는 책이 정말 있다면, 그 중 한 챕터를 너끈히 차지하고도 넘쳐날, '그 혹은, 그녀에게 멘트날리기'편 되시겠다. 일본어, 그러니까 정말 일본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미묘한 성격에 대한 책을 읽다가, 그 책의 저자가 '뜻밖에' 이런 류의 책도 냈음을 발견하고선, 냉큼 구입을 했다. 물론 책을 펼치자마자, 원래 읽고자 했던 '언어학' 책은 뒷전이 됬음은 물론이다.. 혹 빠져들만한 책, 물론 영양가가 있는가의 문제는 이 책을 읽은 각 개인의 실전 응용 능력에 달려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 의 '상실의 시대'를 비롯, 미시마 유키오, 의 '금각사', 그리고 11세기 초에 쓰여진 그 유명한 '겐지 이야기'를 비롯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등의 일본 소설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화려한 사랑고백, 혹은 다양한 작업멘트들을 '민망할만큼' 분석해놓았다고 해야할까. 이러니까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반, 깨져도 '그렇게 깨지니' 멋지지 않은가 반, 등의 이야기들이, 제법 고령의 할아버지인 언어학자에 의해서 정리가 되어졌다는 것도 후훗, 웃음이 나오지만, 띄엄띄엄 접했던 그것들을 작정하고 이렇게 모아보니, 정말 남다르긴 했던 구절들이었구나 싶어 나도 몰래, '나라면' 에 대입시키게 되고 마는 책.

얼마전에 후배들과 차 한잔을 마시면서,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집에서 '몰래'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였지 싶다. 언제부턴가, 이런 류의 책을 공공연한 장소에서 펼치고 읽는 것이 그야말로 '남사스러워졌다'. 차라리 도색잡지 같은 건 대놓고 펼쳐보기가 쉬울지언정, 이런 낯간지러운 제목의 책을 들고 있는 것이 어려워졌다. 뭐랄까, 이런 제목의 책들은 그동안 너무 쉽게 현재 나의 정서나 감정을 넘겨짚어도 좋은, 마침한 도구가 되어왔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일 듯하다. 이런 제목의 책을, 그저 무감하게, 서늘하게 읽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사실을 말한들, 괜히 한소리는 충분히 듣고도 남게, 이미 내 성향이 너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왔던 것도 같고, 그것보다 먼저 사실은, 무감하게, 서늘하게 읽고 있는 것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솔직한 마음일지도. 옛 생각하기 좋은 책, 이라고 하는게 편할 듯. 나는 어떤 '사랑고백'을 받아봤던가, 혹은 '그'들은 어떤 말로 나의 시선을, 마음을 끌었던가, 를 덤덤히 끄집어 내보는 일, 이 나쁘지 않다. 조금 '촉촉해지고' 싶다면, 잠시 책을 접고 기억을 한껏 늘려도 좋겠지만, 개인적으론 '막장' 독자가 되어, 그러니까 죄다 '말장난'이었던게지, 라고 휙휙, 넘겨가는 맛이 더 좋았다고 해야하겠다.

책 이야기로 마무리하자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겐지 이야기'의 겐지의 사랑. "겐지는 우쓰세미, 라고 생각하고 전처 딸과 관계를 맺지만, 도중에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린다. 하지만 천하의 겐지가 이쯤에 당황할리는 만무할 터, 이렇게까지 너를 만나기위해 고생했다고 멋지게 둘러댄다. 설사 내가 사랑한 여자가 네가 아니었고, 사랑 때문에 안았는데 그 사랑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치더라도, 얼떨결에 안긴 상대를 위해 감성적인 멘트 날려주는게 뭐 어렵다고, 행여 그것이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겐지의 사랑이다".. 이 편의 제목이 아주 정갈하다. "그 사랑이 이 사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하다". (2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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