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 아웃케이스 없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나츠카와 유이 외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결혼 못하는 남자'의 아베 히로시, 도 조금 혹, 했으며, 영화 소개글을 보다 찾아듣게 된 이시다 아유미, 의 '블루 라이트 요꼬하마' 도 마음을 동하게 한지라, 보게 된 영화. 노래의 한소절, 인 아루이떼모, 아루이떼모,,는 바로 영화 제목 '걸어도 걸어도..' 이다. 1960년대와 70년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이 노래, 지대로 '엔까' 스럽기도 하고, 우리로 치면 '뽕짝'에 가까워 조금 중독성도 있어 영화를 본 후 한참은 흥얼거리게 될 수도 있다.

15년 전에 죽은 장남의 기일에 맞춰 부모님집에 모인 가족.  의사인 아버지의 기대를 져버리고 미술복원사가 된 차남, 은  애딸린 과부랑 결혼까지 해버렸으니, 아버지와의 시간이 가시방석인게 당연하며, 애까지 달고 온 '중고품' 며느리, 는 자격지심에 눈치만 가득. 그리고 온통 냉소일변도인 엄마한테 '딸려'온 아이에, 이제는 더이상 진료를 할 수 없을만큼 늙은 아버지의 병원을 정리하고 집으로 개조하여, 친정에 얹혀살고 싶은 딸네 식구..까지 모여 장남의 기일을 치루는 1박2일이 잔잔하게, 그리고 '뜻밖에' 유쾌하게 펼쳐지는 영화.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든 생각은, 참 우리랑 다르구나, 그리고 또 한편으론 참 우리랑 똑같구나, 였다. 다를 경우의 '우리'라 함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으로서의 우리이며, 똑같다고 느낄 때의 우리라 함은  그저 '사람' 사는 것은 똑같구나, 싶을 때의 '사람'으로서의 우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일에 제를 올리고, 향을 피우고, 인사를 하는 법, 산소에 찾아가 '많이 덥지' 하며 비석에 찬 물을 등목시키듯 뿌려주는 모습은 우리와는 다른 것이나, '뼈빠지게' 일해서 내가 산 집인데 왜 다들 '할머니집'이라고 하느냐는 할아버지의 투덜거림이며,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등에 업은 자식 때문에 조용히 돌아서야했던 할머니의 인내 그리고, 데리고 온 아이에게 끝까지 '군' 이라고 부르는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서운함, 등은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있는 그런 삶의 단면들이었다.. 

오다기리 죠, 의 '도쿄타워'에서 엄마 역할을 맡았던 키키 키린, 은 이 영화에서도 가족의 신산한 삶을 묵묵히 이끌어 온 '엄마'를 또 한번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녀의 표정연기를 보고 있자면, 살아온 인생의 희노애락, 이 어떻게 저렇게 그때그때 얼굴에 다 그려질 수 있을까가, 정말 놀랍다. 죽은 자식을 그리워할 때, 살아있는 자식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할 때, 혼자 몰래 숨어듣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틀어놓고 맥주잔을 기울일 때, 목욕하는 남편을 위해 무심히 타월을 옆에 놓아둘 때, 보는 사람의 가슴이 그 속으로 빨려들어갈만큼, 덤덤하지만 사실은 너무나 절절한 표정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아들 역을 맡은 아베 히로시,는 냉정하게 말하면 거의 '묻어가는 수준' 이라고 해야할지 후후.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 에서 '가족'으로 나온 배우가 '묻어간다는' 말을 듣는 것이, 타이틀 롤, 이라고 언급되었던 배우에겐 조금 서운한, 잔인한 평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일본영화의 경우, 지명도에 따른 얼굴마담 중심의 캐스팅, 으로 '원톱'을 표방하는 것이 아닌 관록의 연기력과 스토리의 탄탄한 얼개가 관객으로 하여금 진정한 원톱을 분별하게 해주기 때문인 듯하다. 이 영화의 가족들도 할아버지부터, 열살 갓 넘는 꼬마애까지 누구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각자의 스토리, 가 있으며, 이러한 것들이 얼기설기 능숙하게 엮여지면서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흐름이 영화 한편을 완벽하게 이끌고 나가고 있다는 생각. 이런 탄탄한, 치밀한 스토리를 살리고 또 살아남는 배우가 명배우일 것이며, 이런 스토리를 쥐어줘도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는 배우는, 지명도나 인기와는 관계없이 존재감 제로의 배우, 가 되는 것일지도. 

15년 전에 바다에 빠진 동네 아이를 구하고 형이 죽었다는 것, 만이 따지고 보면 유일한 이 가족의 '사건'. 이 마져도 그저 '그랬다'는 이야기로만 언급될 뿐, 셈이지만, 가족 중 누군가가 영원히 '부재'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남은 가족들에게 각각 서로 다른 양상으로 남긴 상처, 는 충분히 전달된다. 당장 죽고싶을 만큼, 가슴이 찢어질만큼의 고통스러운 시기, 는 지나, 세월의 흐름만큼 조금은 무디어진 가족,의 죽음이지만, 무디어진만큼, 일상처럼 남은 가족들에게 배어있는 '숨쉬는 것'과 같은 상처, 라고 해야할까. 제삿날이니만큼, '저걸 저렇게도 해먹나' 싶은 다소 희안한 요리과정이 제법 많이 등장하고, 역시 제삿날 온가족이 모인만큼 우리네 명절처럼 꽤나 왁자지껄, 종종 요란도 한 영화. 자녀들을 배웅하고 '이제 이번 설에 보겠네' 라고 말하는 부모님과 부모님을 뒤로 하고 탄 버스에서 '이번 설엔 안와도 되겠어, 일년에 한번 보면 됬지' 하던 아들. 딱 그만큼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제목과 같은 그것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닿을때까지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그래도 닿지는 못하는, 가족 한 사람의 부재가 그 원인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기에, 우리의 가족과도 같을지 모를, 어떤 가족, 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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