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
아네스 자우이 감독, 아네스 자우이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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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는 당신의 우산이 되어줄께요,, 를 겨우겨우 7월의 마지막날 보게되었다. 한동안 엄청스레 쏟아지던 비가 한풀 꺾이고, 이른바 찜통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지, 밤기운도 후덥덥하기 그지없었기에, 시원하게 물이 넘쳐나는 '해운대' 와 같은 영화라든지, 심지어 눈구경을 실컷할 것 같은 '국가대표' 와 같은 영화에 대한 유혹도 있었지만, 꿋꿋하게 보고싶어하던 것을 보기로. 늘 씨네큐브 2관만 출입하다가, 처음으로 1관에 들어섰는데, 그 작은 규모에 한번 놀라고, 착석했을 때 좌석규모와는 너무나 황송스럽게 큼지막한 스크린이 주는 푸근함과 깊이에, 살짝 2관이 너무 마음에 들어버렸다는. 상대적으로 큰 규모를 갖고 있는 1관에서는 아무래도 때가 때이니만큼, 관객이 좀 몰릴 것 같은 'up' 이 상영되고 있었다.

페미니스트 작가이면서, 양성평등할당제로 정계에 입문하고자 하는 '아가테 빌라노바', 그리고 성공한 여자들의 이야기, 라는 시리즈의 첫 탄으로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타리를 제작하려는 다큐멘타리 감독 '미셸'과 '카림'. 이런 류의 영화가 늘 그렇듯 주인공들은 제각각 '사연'을 갖고 있기 마련이며, 이런 류의 영화를 보고 또 보는 사람들의 '류'가 늘 그렇듯 그 사연의 '진부함'따위엔 전혀 미동도 없이, 난 따뜻해질꺼야, 작정을 하고 기꺼이 덤비기 마련인지라, 여지없이 이 영화도 보고난 후,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영화를 본 것처럼, 흐뭇하고 포근하기가 그지 없었더라는. 

이번엔 정말 잘될꺼야, 화려한 복귀를 꿈꾸며 나름 '드림팀'을 꾸리긴 했지만, 촬영 첫날부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연발하는 미셸과 카림, 집안일을 봐주던 아줌마 미무나, 의 아들, 인 카림, 의 부탁으로, 또 겸사겸사 정계출마를 위해 선전용 다큐멘타리, 를 시트콤처럼 찍고있긴 한데 매사가 마음에 안들고 못마땅한 아가테. 그녀의 고향에서 이들과 함께 하는 이들은 또 있다. 잘난 언니 덕분에 소외감과 외로움의 병이 깊은 아가테의 동생 플로랑스, 이 영화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지만 가장 특이한 캐릭터, 를 맡은 그녀의 남편, 스테반- 그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내를 위해 '키에르케고르'를 읽어준다 - 그리고 아랍계 소수민족으로서 남편한테 맞고 살아야했던 카림,의 엄마, 미무나까지, 자의든, 타의든 조금씩 자신의 삶의 궤적이 반듯하지 않게, 다소 흔들리며 비틀비틀 그려지고 있는 순간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카림이 장난삼아 편집한 '폭군 아가테' 버젼의 동영상을 통해 아가테, 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반성하게 되고, 헤어진 연인 앙투완, 을 다시 찾는다. 또, 그동안 투정으로만 생각해왔던 동생의 '삐뚤어질테야'도, 온통 자신의 사진뿐, 동생 사진이라곤 몇장도 안되는, 오래된 엄마의 사진첩을 통해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이혼 후 아들에게 외면당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미셸, 과 자기에게 기대기만 하는 '찌질' 남편이 아닌 강한 남자를 찾고 있던 플로랑스, 는 잠시 정분이 나나, 미셸은 폭우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 아빠를 찾는 아들에게 달려가고, 플로랑스, 는 자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굶어죽는 일밖엔 하지 않을 남편 곁에 남을 것을 선택한다. 한편, 아내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를 맘에 품게된 일이 어렵고 당혹스러운 카림, 은 '사실은 집에 들어가야해요..' 아쉬움을 떨구면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폭력남편에게 평생을 시달려온 그의 어머니 미무나, 는 처음으로  자신의 자유를 위한 '이사'를 결심하게 된다.. 

불어로 하면, 영화 제목이, '비라고 말해줘요' 라던데. 그게 왜 그저 '비'가 되야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등장인물들의 삶 위에 무겁게 내려앉던 먹구름같은 '인생의 꼬임'이 한줄기 소나기 같은, 빗속을 거친 후 비로소 조금씩 날이 개이듯, 풀려나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듯하다. '타인의 취향'의 감독이었던 아네스 자우이, 가 이번에도 각본,감독, 주연을 도맡았으며, 그녀의 전작을 아직 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평범한 듯 하면서도 은근 끌리는 수더분한 매력이 괜찮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는. 허당 다큐멘타리 작가로 나온 미셸, 역의 배우와는 표현상 '남편'은 아니고 오랜 동반자, 라고 한다. 일종의 고품격 코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가지게된 미스테리, 즉,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해결되지 않았던 의문점은, 영화 내내 오른손을 주머니에 꽂고 나왔던 카림, 이다. 스토리상 손을 다쳤다던지, 흉한 어떤 사고가 있었다든지라는 언급은 전혀 없는데, 평생 그 주머니에서 손한번 꺼내놓지 않은 사람처럼 시종일관 오른손은 주머니 속에.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프랑스에서 아랍계 소수민족으로 사느라 핍박받고 억압받았던 위축과 억눌림의 다른 설정일까 싶기도 하고, 폭력 아버지에 대한 어떤 과거사, 를 대신 의미하는 건가 싶기도 하더라는.

가끔 내가 본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야말로 '스포일러'도 넘는, 전체 이야기가 다 흘러나오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내가 무슨 영화잡지의 새영화 소개하는 기자도 아니고, 게다가 내가 보는 영화의 대부분은, 결말을 알면 김새버리는, 누구나 보고싶어하는 그런 '흥행영화'도 아닌지라, 그냥 술술, 내가 옮길 수 있는만큼, 옮기고 싶은 것을 그대로 적어내는 듯. 이를테면,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내가 전에 어떤 영화를 봤는데, 혹시 그 영화 봤니.. 라고 했을 때, 아니 못봤는데, 어떤 영화인데..라는 물음에 대한 나직나직한 대답, 을 해주는 듯한 기분이라고 해야할까..이야기를 듣고, 어, 나도 한번 봐야겠네,, 라는, 물론, 진짜 그 영화를 상대가 찾아서 보고 안보고는 중요한 것이 아닌, 그런 공감만으로도 그냥 편안하고 좋은, 그런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에서 끄적거리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20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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