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신은 고양이 - 프랑스 편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42
샤를 페로 원작, 강정연 글, 아니타 안제예프스카 & 안제이 필리호프스키-라뇨 그림.사진 / 비룡소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잘 알려져 있는 명작은, 읽지 않고도 다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보지 않고 본 척 하는 영화 Best 10 시리즈를 어디선가 봤는데, 아마 읽지 않고도 읽은 척 하는 책도 수두룩하게 댈 수 있을 거다. 읽은 척하는 매뉴얼인가 하는 책이 나온 것도 봤다. 사람들 심정은 아마도 다 비슷한가 보다.
 
'장화 신은 고양이'를 처음 접하고 역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미 '장화 신은 고양이 눈망울'로 대표되는 영화도 본 마당에 책 내용이 뭐 특별하랴. 읽어보지도 않고 아이에게 건내어 주려고 했다.

그런데 책을 받아보니 표지부터 뭔가 좀 달랐다. 원작자와 글쓴이에 대한 명기는 그렇다치고, 그림 작가가 둘인데 그림/사진으로 되어 있다. 아이 동화 책에 사진이 뭔 말인고.
 
이 표지는 내가 알고 있는 '장화 신은 고양이'가 아니다! 그 해맑은 눈망울은 다 어디로 가고 저 딩굴딩굴 구슬 같은 게 붙어 있는 고양이가! 게다가 얼굴의 저 나무 조각은 무엇이며, 천 조각들이며 철사 들은 다 뭐란 말인가. 설마 이렇게 하나 하나 만들어서 책을 엮었다고?
 
하나 하나 재료를 이용하여 표정 변화를 만든 책이다. 표지의 벙글벙글한 고양이 얼굴이 놀란 표정으로도 순식간에 변하였다. 철사를 둥글둥글 구브려 눈알을 만들고 구명이 뚫려 있는 쇠조각으로 입을 표현하면서 깜짝 놀란 고양이의 얼굴이 되었다.
 
한편 쥐를 덥석 잡아 먹는 장면에서는 생동감 있는 눈알 굴리기와 삐쭉히 드러낸 이빨로 야성의 고양이로 변해 버렸다. 여러가지 소재의 사용과 아이디어로 고양이 얼굴이 여러 표정을 띄고 있다.
 
작가들이 가장 공들여 만든 것이 결혼식 장면이라고 했는데, 인물 하나 하나를 배치하고 촛불로 불꽃놀이를 표현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림 하나 그리는 것도 물론 어렵고 상상 못할 일이지만 인물을 구상하고 맞는 재료를 구하고 적당히 배치하여 사진으로 표현하는 건 더더욱 나로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일반 그림책과 달리 이렇게 표현한 책은 내 머릿 속도 한 폭 더 넓어지게 만드는 것 같다.
 
내용은 알다시피 고양이 한 마리만을 유산으로 받게 된 남자가 고양이의 지혜와 꾀로 기회를 얻어서 결국 아름다운 공주를 배필로 맞이하여 잘 살게 되고 고양이도 편하게 잘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얼핏 책을 읽고나서는 나도 이런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으면, 내 옆에서 누가 이런 지혜로움을 빌려 줬으면, 나에게도 이런 기회를 누가 주었으면, 이런 바람이 먼저 들긴 한다. 아이들도 책을 읽으면서 저마다 자기의 바람을 생각하며 나만의 고양이를 기대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이런 고양이의 지혜로움을 갖고서 어떤 어려움이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용기와 격려를 받게 되었을까?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고 품게 된 궁금증과 더 한 우려의 마음도 있다.
 
아무리 주인님을 위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고양이의 이런 태도는 바른 일일까? '사납게 으르렁대는' 협박을 통하여 농부들에게 거짓된 말을 하게 만든 건 이른바 '협박에 의한 위계' 죄가 아닌가? 거기에 다른 주인이 있는 논을 카라바 백작의 것이라고 왕에게 거짓으로 알리고 믿게 만든 건 분명한 '사기' 죄이기도 한 것인데. 그저 '꾀'를 내었다고 넘어 가기에는 조금 심한 상황이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또 어떠한가. 앞에서 말한 논도 성도 사실은 '끔찍한 괴물'의 것이었다. 그래서 고양이는 이 괴물의 재산을 자신의 주인인 카라바 백작의 것이라고 주변을 위협하여 거짓으로 알리는데 동조한 것을 넘어서 괴물의 성 안으로 들어가 괴물을 (역시 꾀를 내어) 냉큼 잡아 먹는다. 그리고 안전하고 확실하게 괴물이 전 재산의 주인이 되게 만든다.
 
(물론 이 자체도 입에 담기 무서운 용어의 죄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앞서서 '끔찍한 괴물'이라는 표현 자체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책 안의 내용으로만 보면, 이 괴물이 어떤 끔찍한 존재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괴물이 나쁜 일을 평소에 저질렀는지, 괴물의 엄청난 재산이 남의 것을 가로채어 형성한 건지, 괴물이 선량한 (예를 들면 농부들) 사람들에게 못된 행동을 한 건지, 어떠한 내용도 나와 있지 않다.
 
괴물이 자신의 전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심지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책만으로만 보면 '끔직한 괴물' 이란 게 오로지 그 이유일 뿐.
 
책 속의 괴물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긴 코는 부러진 나무가 볼쌍사납게 나와 있고 머리는 이상한 덤불들로 만들고 보기 흉하게 성긋성긋한 이빨도 표시해 두었다. 이미지로 볼 때 끔찍한 괴물은 '끔찍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는 걸 연상시키려고 했을 의도일테다.
 
괴물의 구체적인 나쁜 성격이나 행동이 나와 있지 않는 상태에선 '끔찍한'이라는 건 그저 '외모'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 하다 못해 한 줄로라도 괴물의 끔찍한 행동을 나타내어 주었다면, (그렇다고 해서 괴물의 재산을 뺏는 게 옳으냐는 별도로 하더라도) 끔찍한이 '외모'를 바로 수식하도록 하여 외모의 이미지를 존재의 성격으로 편견을 갖게 만드는 불편한 공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더군다나 '끔찍한 괴물'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라고 해 놓은 부분도 걱정스럽다. 저 페이지의 문장으로만 보면 (실제로 그 이상 설명도 없고) 혹시라도 끔찍한 괴물 = 돈 많은 부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건 아닌가는 우려도 있다. 만약 부자의 것이기 때문에 뺏어도 좋다라는 생각이 스며들게 되는 건 옳은 방향은 아니지 않은가. 
  
책은 책일 뿐, 따지지 말자. 정성들인 책을 두고 너무 깊게 들어갔구나. ... 하지만 나에게는 늘 따지는 어린 영혼이 하나 있는 걸. 언제 어디서 어떻게 머릿 속에 생각들이 스며 들어 있다가 언제 어디서 어떤 식의 문제 제기를 해 올지 모르는 당황스러운 영혼.
 
아이들이 보는 책이니만큼 조금 더 조심하였으면 하는 아쉬움. 그림에 기울인 재기발랄한 발상과 정성 만큼 글의 연결도 조금 더 신경 썼다면, 아이에게 다시 읽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느낌의 책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