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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 미국을 뒤흔든 세계 교육 강국 탐사 프로젝트
아만다 리플리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초중고 12년간의 교육과정은 오로지 대학 입시를 위해 존재하고 학교는 당연히 지겨운 곳이고 선생들은 소명이 없고 학생들은 끊임없는 경쟁에 지쳐간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나라 교육의 풍경은 이런 것이다. 이 책에서 나온 그대로 한국의 교육 제도에 불만을 갖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실제로 그래서 교육을 어떻게 바꾸는 게 좋겠냐고 물어도 사실 별다른 답을 하기가 힘들다. 진짜 다른 나라의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알지 못하고 별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성장한 것이 그래도 이런 문제 많은 교육 제도 덕분이었다는 논리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교육제도를 꿈꿔봐도 그것이 어떻게 실현이 가능할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킬지 떠올리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교환 학생의 시선이라는 색다른 방법을 통해 다른 나라의 교육 체제를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는 신선한 기회를 제공한다.
아이들에게 기대하지 않는 미국
독자 입장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미국의 풍경이었다. 괜히 부러워했던 미국의 교육, 실제로는 별거 없다는 느낌일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어렴풋이 미국의 교육을 동경하거나 우리나라 교육이 지향해야할 롤모델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교실의 시설이나 국가 지원이 최고수준인 미국에도 문제점이 만만치 않다. 아이들에 대한 기대는 너무 낮고 교사 양성이나 학업적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는 터무니없이 빈틈이 많다. 막강한 교육 보조비나 정부의 의지에 비해 비효율적인 학업 성취도는 독자로서 안타까울 정도다.
최고의 교사를 가진 핀란드, 실패도 괜찮다는 폴란드
핀란드는 잘 알려진대로 피사에서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나라이고 폴란드는 최근 피사 점수가 급격하게 상승한 나라다. 이 두 나라의 예는 엄격한 교원 임용과 교육 체계의 엄밀함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학생들에게는 훨씬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주어지고 단순히 학업성취도가 개인에 있어서 그다지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은 한국과 다르다.
가장 똑똑하고 불행한 학생들 한국
사실 우리나라 사회를 논하는 외국의 콘텐츠를 볼 때 괜히 예민해질 때가 있다. 너무 비판적으로 보고 있으면 우리 나름의 사정이 있는데 자신들의 논리로만 재단한다는 생각이 들어 방어적인 입장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럴 것이 없다. 교육 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한국의 사례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한국의 교육의 풍경은 너무 익숙하다. 수능 당일의 난리법석이나 학원가의 풍경도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우스꽝스럽지만 우리로서는 너무 당연하고 익숙한 씁쓸한 현실이다.
이 책은 사실 미국의 교육 제도를 위해 쓰여진 책이다. 미국의 실패와는 다르게 무엇이 (적잖은 문제점이 있을지언정) 한국과 핀란드, 폴란드의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의 학원과 비정상적인 교실 환경은 교육의 실험장과 살인적 경쟁의 극단적 환경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한국의 독자 입장에서 실제로 이 책이 생각하게 하는 것은 똑똑한 학생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우리가 놓쳐버린 것은 무엇인지이다. 우리와 비슷하게 최고 수준의 학업 성취도를 보여주는 핀란드는 정작 피사점수에 호들갑을 떨거나 입시 점수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지 않는 장면을 보고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랄까.
미국의 독자들에게는 제목 그대로 어떻게 이런 나라들이 똑똑한 학생들을 만들어냈는지 알려줄지 모르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똑똑한 학생들을 만들어내는 데 지 않은,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진짜 똑똑한 교육의 풍경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