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았는데 딸이었다. 아이를 낳았다는 기쁨도 잠시, 딸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려나.’ 나의 성교육 공부는 내 자식에 대한 걱정과 내 자식을 안전하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관련 책을 읽다보니 내가 과거 학창시절에 배웠던 성교육은 성교육이 아니었다. 내가 배웠던 성교육은 임신과 출산, 정자와 난자가 어떻게 만나 수정이 되는지에 대한 교육. 딱 거기까지였다. 순간, 살면서 당황하고 어찌할 줄 몰랐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배우지 못해 답답하고 당황하고 난감하고 때로는 불쾌했던 감정들을 이유가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만약 포괄적 성교육을 배웠더라면. 학교와 가정에서 포괄적 성교육이 제대로 되었더라도 내 탓을 했을까?
이 책에서는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포괄적 성교육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제대로 된 매뉴얼을 만들어 생애 주기별로 학교와 가정에서 포괄적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 성교육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모든 내용에 동감했고 내 아이의 성교육에 대한 방향도 잡을 수 있었다. 포괄적 성교육이 학교와 국가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선 가정에서부터, 내 아이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내 아이에게 어떻게 교육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기억에 남는 문장-
솔직히 밑줄 친 문장이 너무 많아서 그 중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만 다시 추려 정리했다.
p7 우리에게 부족한 건 단순히 몇 시간 남짓의 성교육이 아니라 성평등한 관점이었다.
p12 포괄적 성교육은 성지식과 함께 성적 자기 결정권,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존중, 성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 이제 임신, 출산만 이야기하는 성교육은 사라져야 한다.
p18 모든 것을 위험 요소로 보고 차단하겠다는 안전중심주의를 채택하면서 청소년의 알 권리, 성적 자아를 탐색할 권리를 박탈할 자경이 우리에게는 없다.
p203 위험만을 강조하는 성교육은 보호라는 명목으로 청소년을 통제하기 쉽고, 청소년의 성적 권리와 즐거움을 보장하지 않는다. 청소년이 성을 접할 때 위험에 빠지는 이유는 성적 권리와 즐거움을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나 역시도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고 싶다는 이유로 페미니즘과 성교육 공부를 시작했지만 공부를 해보니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 아이기에 p43 자녀에 대한 사랑과 통제 욕구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렇기에 매번 마음을 다잡으며 공부한다.
p25 아동, 청소년들이 성교육을 받고 성적으로 건강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조기 성애화를 부추긴다며 비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p34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느끼는 경험을 하면서 성에 대해 열린 자세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교실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p47 모든 스킨십은 적극적인 동의를 바탕으로 해야 하며 자기 몸의 결정권은 어떤 순간에든 존중받아야 함을 강조한다.
p86 존중받은 경험을 계속 쌓아 가다 보면 나중에 존중받지 못했을 때 그것을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폭력민감도’라고 한다.
p89 성교육은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어떻게 가르치는가가 중요하다.
p93 혐오표현을 제지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거 아니에요? 표현의 자유가 왜 있을까요? 권력자들에 의해서 약자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혐오표현만이 만연해진다면 누군가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혐오표현을 제지하는 것이 결국 모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길이다.
→ 이 내용도 꼭 기억해둬야지.
p97 미국 입국 심사할 때 나를 심문하듯 조사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누구도 ‘왜 나를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는가?’ 라는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테러와 관계없는 사람이지만 과거 테러 피해가 얼마나 막대했는지 알고 있기에 내가 협조하는 것이 앞으로의 테러를 막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잠재적 가해자라 느껴 불만을 토로하지 말고 성폭력 사건의 피해가 크기 때문에 또 다른 피해를 막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폭력예방교육이 필요하다.
→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때 남자들은 자신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본다며 불쾌해하고 페미니즘을 비난한다. 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기억해둬야지.
p99 모든 상황에 통하는 정답을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의 선택이 서로의 안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 주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 소통의 중요성.
p130 가정이 포괄적 성교육을 하는 데 최적의 장소다. 나는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가 ‘성’이란 주제로 상처받는 날도 있고, 즐거운 날들도 있을 것이다. 상처를 받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상처를 안 받길 바라는 것은 욕심인 것 같다. 내 아이에게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고 어떤 피해, 가해도 없이 자라기를 바라기보다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에 맞서면서 성장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 맞다. 나도 이 마음이다. 상처 받지 않길 바라지만 그건 불가능하니 상처를 받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포괄적 성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p144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상황에 따라 스킨십이 싫을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어야 건강한 관계다.
p147 안전하고 건강한 관계라면 싫어도 참고 해 주는 게 아니라 서로 좋아하는 스킨십을 발견하고 그걸 같이 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결국 서로에 대한 관심과 소통이다.
→ 거절은 어렵다. 나의 거절로 인해 상대와의 관계가 끝날까봐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거절이 어렵다. 스킨십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하지만 이제는 힘들어도 조금씩 거절을 하려고 한다. 남편에게도 어떤 스킨십은 싫고 어떤 스킨십이 좋은지 솔직하게 말한다. 그것이 관계를 더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에 용기를 내 말한다.
p169 성교육은 지식, 기술, 태도를 다루는 교육이다. 정확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타인을 혐오하지 않는, 다름을 포용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 나는 다양한 성에 대해 어디까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이 문장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p183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게 어떻게 자유가 되겠어요?
p215 위험하니까 보호해 주려고, 싫어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통제한다.
p220 즐거움이 뭔지 알아야 폭력과 구분할 수 있다.
p223 ‘페미니즘’이라는, 차별과 억압을 예민하게 성찰하는 관점 속에서 구성되어야 한다.
p248 원칙을 만들고 기준을 지키는 일보다는 그 원칙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소통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페미니즘과 교육, 둘 다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