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책방
오승현 지음 / 구픽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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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시절 시험기간에 벼락치기 공부를 할 때, 쏟아지는 졸음을 쫓다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교과서를 베고 내일 아침까지 자고 일어나면 교과서의 모든 내용이 내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상상. !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나는 이 개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텐데……. 그렇게만 된다면 나의 성적은 수직상승할 것이고 부모님께서 기뻐할테고 내가 원하는 대학도 갈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그저 상상일 뿐. 나는 다시 쏟아지는 잠을 쫓아가며 교과서의 내용을 암기하고 또 암기해야 했다.

 


꼰대책방 속 미메시스, 미미는 학창시절 나의 상상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미메시스, 미미는 내가 했던 상상처럼 교과서 내용을 머릿속에 넣는 것 정도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지혜를 내 머릿속에 옮겨 넣는 것이다.

학창시절 내가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것!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꼰대책방 속 세상.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렇다면 나는 누구의 어떤 지혜를 내 머릿속에 넣을까? 즐거운 상상까지 해본다.

 


하지만 완벽한 프로그램은 없다. 인위적인 것은 반드시 부작용이 있는 법.

완벽할 것 같았던, 완벽해 보였던 미미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미미에 자신의 지혜를 판 사람들은 파킨슨병에 걸려 몸과 지혜를 잃었고 미미를 자신의 머리에 이식한 사람들은 지혜와 함께 온 타인의 기억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잃었다.

돈으로 산 지혜는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필요한 지식 머릿속에 무작정 때려 넣는다고 그게 지혜가 되냐?

지식은 경험이라는 틀 안에 존재해야만 지혜가 되는 거거든. 온몸으로 체득한 경험의 산물이 손에, 발에, 눈과 코와 입과 피부에 달라붙어. 온 신경을 자극하지. 그것들이 뇌 속에 쌓인 지식들과 결합하면 지혜라는 부산물이 분비되는 거야. 결국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어떤 지혜를 갖게 되느냐를 결정하는 거다. (p206)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으며 책의 줄거리를 따라가며 책 속의 세상을 상상하며 얻는 즐거움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화려한 영상을 보며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어릴때부터 많은 영상에 노출된 아이들은 점점 온전히 하나의 영상을 보는 것도 버거워져서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재미있는 짤방(자투리 이미지 파일)만을 골라 본다.

긴 스토리의 영화조차도 가만히 앉아 집중하며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해 자극적이고 내용이 복잡하지 않은 공포영화나 액션영화에 열광한다.

하지만 지금 제노빌딩에는 책이 없다. 이제는 헌책방, 중고 책방조차도 흔치 않다. 구시대의 유물 중 박물관에도 입성하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유물이 바로 책일 것이다. 유물보다는 오물에 가깝다고 할 정도가 되었으니까.(p8)

책이 없는 세상. 이런 아이들이 자란다면 미메시스는 소설이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가까운 미래에 책이 사라지고 미메시스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나의 즐거운 상상이 오싹함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고 한 나쁜짓. 이 말에 지언도 가슴이 짓눌렸다.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매일매일 느끼지 못한다. 아무도 그럴 정도로 민감하게 남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하루를 살아 내기 바쁜 현대인은 지금 여기, 현재에 충실할 뿐이고 하루라는 짧은 시간은 내 삶을 돌아보기에도 부족해서 남들의 이야기가 부당한지 정당한지 관심을 가질 틈이 없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호기심은 뉴스를 들으며 쯧쯧 내뱉는 두 글자로 충분할 정도다. 하지만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시간들이 모여 과거라는 큰 덩어리의 역사가 되면, 그건 이야기가 다르다. 뒤돌아 과거를 되짚어 보면 모르고 지나가기에 너무나 극명한 역사의 오류가 보이는 법이다. 잘못 들어선 물줄기에 오염수가 섞이고 쓰레기들이 뒤엉켜, 지나칠 수 없는 악취가 코를 찌르는 법이다. 그런데도 그걸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지언은 이제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p214~215)

 


그래. 외면하지 말자. 아이들이 꼰대라 부르는 우리가 해야 한다.

이미 많은 곳을 거쳐 와 넓은 땅에 단비를 적셔 주었어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 어제와 다른 곳을 적시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꼰대라는 것이다. 흐르는 꼰대(p61)

우리는 흐르는 꼰대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내 손가락 사이로 책장의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읽는다. 그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기록한다. 그 기록을 나의 진짜 꼰대들과 함께 공유하며 이야기한다. 나는 죽을때까지 멈춘 꼰대가 아닌 흐르는 꼰대로 살아가며 지금의 아이들 역시 흐르는 꼰대로 만들어 미메시스라는 것이 절대 나오지 않는, 책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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