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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8년 11월
평점 :
마음이 힘들 때면 서점에 간다. 매대를 훑어보고 책꽂이를 살펴보며 나의 고민을 해결해 줄 책을 찾아 헤맨다. 내 안에 못다 한 과제처럼 쌓여있는 여러 고민과 풀리지 않는 인생의 수수께끼. 이 수많은 책 속에서 누군가는 정답을 말하고 있겠지. 어딘가에 정답이 있으리라는 생각만으로도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된다. 나에게 책은 ‘인생이라는 문제집’의 해설집이다.
사람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던 어느 날, 이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면 본인만 힘드니 그냥 마음 편하게 포기하라는 말인가? 아니면, 우리는 애당초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뜻인가? 불신의 눈초리로 책 표지를 바라보는데, 표지에 그려진 사람이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나도 이렇게 편안해질 수 있을까? 의심과 기대를 동시에 품고 책을 펼쳤다.
이 책은 5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성악설의 권장, 2부 있는 그대로 둔다, 3부 좋은 사람이길 포기한다, 4부 지켜야 할 예의, 5부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이 목차가 곧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순서인 듯하다. 성악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에게 있는 악을 자각할 수 있다. 누구에게서나 탁월한 면을 찾아내고 인정해 주는 안목이 있어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둘 수 있다. 나와 관계없는 일에서 좋은 사람으로 가장하기보다, 나를 괴롭힌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목표로 삼는다. 상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례이므로, 우리가 지켜야 할 예의는 타인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4부까지 읽었을 때 깨달았다. 작가가 말하려던 것은 ‘포기’가 아니라 ‘균형’이었구나. 우리는 겉보기에 좋은 사람이 되려다 균형을 잃기 쉽다. 책의 내용을 곱씹으며 내 안에 있는 불균형을 찾아본다. 그리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결국 나였다. 어느새 나는 5부의 소제목처럼 사람으로부터 점점 편안해지고 있었다.
이 책을 쓴 소노 아야코는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화로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선천적인 고도근시를 앓았기에 어린 시절이 늘 어두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두운 어린 시절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고, 그는 <멀리서 온 손님>이라는 소설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림자를 진하게 그림으로써 화가는 빛의 세기를 나타낸다.’ 어두운 어린 시절이라는 그림자가 있었기에 사람을 위로하는 빛나는 에세이집을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짧은 글이 총 169편 실려있다. 처음부터 죽 읽어도 되지만 소제목을 보고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좋다. 평소에는 책을 보물단지처럼 여기며 깨끗이 보는 편이지만, 이 책만큼은 밑줄을 긋고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책에 남긴다. 나중에 다시 펼쳤을 때 소노 아야코의 생각과 내 생각을 함께 보는 즐거움이 크다.
소노 아야코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좋은 사람 노릇하기에 신물이 났거나, 그만 지쳐버린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작가가 누릴 수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행복일 테니까.
지쳐있는 당신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