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평점 :
소설은 마리아라는 창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브라질 어느 시골에서 자라난 이 여자가 어떻게 창녀가 되었는지, 창녀로서 무엇을 사유하고 무엇을 고민했었는지, 그녀의 진정한 사랑, 랄프 하르트를 만나 어떻게 사랑을 이루었는지를.
마리아가 성장하는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마리아가 스위스 제네바로 날아와서 창녀로서 살아간 1년 남짓의 시간을 주로 다루고 있다. 창녀들 세계의 비밀들이랄까, 사디즘의 기원 같은 것, 창녀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런 것들을 소설 속에 담고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이 사람의 소설은 소설로서의 흥미를 갖게 하진 못하는 것 같다. 인물들이 아주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것 같지도 않고. 밀란 쿤데라가 같은 주제로 소설을 썼다면 그 분위기가 어땠을지 시종 궁금했다. 마리아가 진정한 사랑을 얻게 되는 대목에 대한 묘사도 그저 덤덤하고 상투적이었다고나 할까. 초반부의 마리아가 성장하는 과정을 비교적 짧고 경쾌한 듯한 문장으로 담아낸 부분은 마음에 들었으나, 중반 이후로는 창녀들의 세계를 다루는 느닷없는 웬 다큐멘터리? 하는 기분이었고, 특히 후반부에서는 초반부의 신선한 진행도 실종되고 문체의 탄력도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더구나 마리아가 랄프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에게 하는 어떤 말들은, 마리아의 내면을 일기장까지 샅샅이 볼 정도로 가까이 접한 독자들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낯선 면모였다. 도서관에서 많은 책들을 빌려 탐독하고 몇 개월 동안 어떻게든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 농장을 경영할 꿈을 가지고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창녀라는 설정은 매우 특이하기 하지만, 그 일기의 문체는 화자의 말투와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굳이 일기의 형식을 빌릴 필요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