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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은 독
오리가미 교야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치명적인 매력을 표현한 것일까? 꽃과 독이 같이 있는 제목에, 치명적으로 현란한 꽃다발 그림. 이 책은 괴로운 밤 외로운 사내에게 요부가 다가가듯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똑똑하고 정이 많고 무해한 도련님, 법률가 집안의 아들인 기세는 프로 오지라퍼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돕는 데 적극적이고, FM이고(요즘에도 이런 표현 써도 되나.ㅎ) 정의롭지만 좋아하는 사람에 한정해서는 마음이 여리고 정도가 아닌 길도 걷고, 그 사람을 쉽게 믿고 끝까지 믿는 순수청년이자 오지라퍼이다. 기세는 중학생 시절 친척 형인 소이치가 학폭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교내에서 탐정놀이에 빠진 소녀탐정 기타미 선배를 직접 찾아가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며 그녀에게 매료된다. 기세는 기타미가 얄팍한 술수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에는 100% 동의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의 당당한 태도와 기발한 발상과 수완에 매료된 것이다. 기세는 법률가 집안의 도련님인데, 짜놓은 시나리오처럼 법대생이 되었다. 하지만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 고민은 과외 선생님과 나눈다. 소년 가세의 공부를 도와준 것은 마카베 겐이치라는 의대 형이다. 핸썸맨이자 인기맨인 마카베도 의사 집안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에 들어간 터라 가세의 고민을 잘 들어주며 멘토의 역할을 한다. 당연히 가베는 워너비 마카베를 무지 좋아하게 된다.
우연히 다시 만난 마카베는 의사가 아니었고, 가구 매장 점원이었다. 예전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기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는 결혼을 앞두고 '결혼하지 말라'는 협박 편지를 받고 있었다. 프로 오지라퍼 기세가 그냥 넘어갈 리 없다. 기세는 기타미 선배를 떠올리고는 진짜 탐정이 된 그녀를 다시 찾아가 사건을 의뢰한다. 막상 당사자인 마카베는 사건 의뢰를 망설이는데, 우리의 기세는 사비를 모아 사건을 단독으로 진행시킨다.
결국 가세의 악의 없음에 마카베도 탐정 의뢰에 동의하고, 기세 법대생과 기타미 탐정은 사건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그 과정은 때로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 때로는 기타미의 밝은 촉으로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단서를 메모해 가며 책을 읽다가, 어느샌가 나도 기타미가 되어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ㅎ 회사 쉬는 시간에도, 카페에도, 휴양지에서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범인을 추적하면서 마카베가 의대생일 때 강간 사건 피의자였다는 것, 그러면서 의대생 친구들뿐 아니라 가족들과도 멀어진 상태라는 게 밝혀진다. 탐정 기타미가 만나는 마카베의 친구들, 전 연인들, 그리고 그의 어머니까지 마카베가 강간범이 아니라고 100%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중에 범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열심히 메모했던 내 노트가 부끄러워진다.) '그럴 애가 아니다'라고는 모두 말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가 '합의'했다는 사실과 결정적 증거들 앞에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기세 같은 스타일의 사람이지만, 저 정도의 증거와 심증 앞에서는 아마 흔들리지 않았을까?
강간 사건의 피의자와 피해자가 서로 상대를 모른 채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약혼까지 하게 된 설정 등은 다소 억지스럽다고 섣불리 생각하며 안일하게 결말을 향해 책을 읽던 그때, 딸이 무섭다는 강간 피해자의 아버지 등판. 이때부터 오리가미 교야(이 책의 저자)를 존경하며 책의 결말에 도달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소재도 다소 쇼킹하지만, 큰 이야기 줄기는 다소 단조롭다. 그래서 인물들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가 뭐라 하든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에 매력을 느꼈고, 프로 오지라퍼의 순수함에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가도 남의 인생에 개입하는 정도가 다소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친구, 또는 가족의 말을 믿지 못하고 정황에 휘둘리거나 시기, 질투 등의 자기 마음에 휘둘리는 소시민적인 보통의 방관자들을 보고도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연예인 사건들에 쉽게 판단다고 결론 내렸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매력적이었고, 그 안에서 다양한 군상의 인간상을 볼 수 있어서 기억에 많이 남을 작품 같다. 그리고 '집착'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