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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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가을,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출렁거리는 젊음, 돈 안 되는 방황도 20대의 특권이라 여겼는데, 이룬 것도 없고 이 사회에 진입조차 못 한 채, 이제 곧 서른이 된다.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엄마와 아빠는 이재명 지지자, 딸은 심상정 지지자, 동생은 윤석열 지지자이다. 대선 기간 내내 가정 내에서 당파싸움이 끊이지 않았는데, ‘문재인 정부에 종북세력이 많다는 게 사실이냐’는 아들의 발언이 결정타를 날렸다. 아빠가 아들에게 핸드폰을 던졌고, 얼굴에 멍이 든 아들은 집을 나갔다. 대선이 끝나고 간신히 이루어진 가족 식사 자리에서 화해가 이루어지나 했는데, 딸이 커밍아웃과 함께 결혼 발표를 해 버렸다.

 

바로 여기, 지금, 우리를 그린 소설이다. 읽는 내내 솔직하고, 유쾌하고, 당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주변 환경을 가감없이 그대로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인물 설정과 환경 묘사가 섬세하게 사실적이어서,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깊이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책은 네 가족을 따라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이 바뀔 때마다 화자를 달리하여 전개되는데, 네 사람 모두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성별도, 환경도, 연령대도 제각각인 인물들을 하나같이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저자가 얼마나 끈질기게 사람을 관찰하고 연구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지난 대선은 많은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상흔이 아니기를 빌었는데, 그런 바람은 점차 빗나가고 있는 것 같다.

작년 대선은 그리 길지도 않았는데, 벌써 아주 오래전 일 같다. 나는 결과에 크게 실망했고 절망했으며,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을 원망했다. 이후 정치적 비보가 들려올 때마다 그들의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대선 후 약 1년,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이런저런 변화를 거친 후에 이 책을 접했다.

이 책은 지극히 현실적인데, 단 한 가지 현실과 다른 점이 있다. 이 책의 가족들은 정치적으로 다른 선택을 한 서로를 탓하지 않는다.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는 사과하려 하고, 화해하려 하며, 서로를 사랑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한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선택은 거기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나와 다른 투표지를 낸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꾸리려 한 사람이다. 상대편에 돌을 던지는 것으로는 무엇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결과는 나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인지, 어떤 사람을 지도자로 올릴 것인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시대를 다시 들여다보고, 깊은 생각에 빠질 시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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