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않은 형제들
아민 말루프 지음, 장소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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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안타키아의 오솔길을 산책하노라면 때로 발밑에서 달팽이 껍질이 으스러지는 마찰음이 들린다. (...) 나의 무심한 밤 산책이 달팽이들한테는 치명적인 원정이고, 무해한 내 신발은 살상무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약한 존재가 그보다 지나치게 강한 존재와 마주치는 길목에서 발생하는 일인 것이다.

아무런 예고 없이, 초대하지 않은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고 생각해 보자.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인다. 그들이 우리를 돕기 위해 왔다고 말하더라도, 그 순간 우리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그들의 개입이 과연 우리에게 축복일까?

『초대받지 않은 형제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인류를 마주한 한 만화가가 한 달 동안 작성한 기록이다.

풍자 만화가 알렉과 소설가 에브는 안타키아라는 대서양의 작은 섬에 사는 단 둘뿐인 주민이다. 지극히 평범하던 어느 날, 섬의 모든 전기와 통신이 두절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것들이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그 일을 벌인 사람이 우리와 전혀 다른 또 다른 종류의 인류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들은 현대 지식으로는 닿을 수 없는 기술과 절대적인 힘을 구사하며 전쟁을 막기 위해 사회에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이 사실일까? 그들이 완전한 선의로 가득 차 있다고 한들,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방향으로만 작용할까?

작품은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이한 절대자와의 조우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깊이 있고 현실적으로 풀어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에 개입했을 때 빚어지는 정치적 혼돈과 일반 대중의 반응, 그리고 그 사태를 관찰하는 한 개인의 고찰을 솜씨 좋게 엮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저자는 '절대자가 나타나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면'이라는 질문을 대전제로 인간의 세상과 삶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더 이상 세상의 주인이 아닌데, 수명이 몇이든 무슨 상관이겠어?'

이 작품은 얼핏 판타지의 소재를 차용하고 있지만 지극한 현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동시에 집단으로 누군가를 격렬히 증오하기도 한다. 나는 내 삶이 끝내 내 손 안에 있으며, 다른 누군가가 대신 맡아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것, 더 큰 힘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부딪히는 게 제일 좋겠다.

흥미로운 소재였고, 저자의 표현력이나 문장에서 깊이가 느껴지는 점도 좋았다. 다만 일기 형식을 차용한 이유와 주인공의 직업이 왜 만화가여야만 했는지가 분명치 않았고 결말부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전개된 점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힘있게 이야기를 끌어가 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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